한국일보

봄날에는 편지를 쓰자

2004-03-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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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춘 석 (뉴욕그리스도의교회 목사)

언제부턴가 우리 생활에 편지 쓰는 버릇이 없어졌다. 전화 한 통이면 만사가 끝이다. ‘부모님 전상서’로 시작되던 편지도 ‘사랑하는 그대에게’라는 연애편지도 먼 옛날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요즘은 기껏해야 이메일 몇 자가 전부이다. 그것도 문법도 도저히 맞지도 않는 해괴한 말투로 말이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은 편지로 되어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하고 있다. ‘고든 맥도날드’는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에서 ‘일기를 쓰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인간의 마음을 얼마나 다스려주고 정리하게 하는 것인지 글이란 참으로 놀라운 도구’라고 적고 있다.


십 오년 전에 집에 홀로 앉아있던 어린이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 일을 하였다. 그 편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린이들에게도 전달되어졌다. 급기야는 종이비행기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매주 이천통이 넘었다. 어린이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의 일생에 있어 가장 처음 자기 이름으로 받는 편지가 종이비행기가 되길 원하였고, 읽혀진 편지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가며 읽혀지길 원하는 소원을 갖게되었다.

뜻하지도 않은 답장들이 어린이에게서 오고 부모에게서 왔다. 때로는 ‘우체부 아저씨 어린이를 만나면 주세요’라고 겉봉에 써서 보내기도 하였다. 종이비행기는 섬마을의 어린이에게 장난감도 없는 시골 어린이들에게 매주 찾아가는 또 하나의 친구였다. 그러나 그 종이비행기도 사오년을 버티다가 인쇄비용은 물론 발송비까지 고갈되어 그만 두고 말았다.

그 후 어느 날, 한 사람이 연락을 해 왔다. 지금도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느냐고. 그 후 난 종이비행기에 대한 일을 다시금 시작하기로 하였다. 이제 홈페이지도 만들고, 종이비행기도 다시 인쇄하여 어린이들에게 보내기 시작하였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매주! 칙백통의 편지가 나르고 있다.

종이비행기는 어린이들에게 잘 사는 법 보다는 바르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싶어 무료로 보내는 한 목사의 편지이다.또 하나를 시작하였는데, 교우들에게 저녁 편지를 쓰는 것이다. 이것은 이메일을 통하여 매
주 한 번씩 보내진다. 글을 잘 써서 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에게 격려하고 위로하고픈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다. 정말 그 위력은 주일에 교인들의 얼굴에 나타나 있다.

편지는 어떤 사실을 전해줄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아름답게 가꿔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길고 짧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성이 담기도록 쓰는 일이다. 편지를 쓸 때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듯 상대방의 수준에 맞는 쉬운 말로 써야 한다. 그리고 사랑과 공경의 마음이 느껴지도록 성의를 다해야 한다. 할 말은 명확하게, 자세하게, 그리고 알
기 쉽게 적어야 한다. 그러나 집에 오는 수많은 우편물 중에는 스팸메일이 더 많은 현실이기에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도 잊혀지고 있다.

그렇다. 글 중에서도 특히 부부가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용기를 부어주는 편지라면 풍성한 삶을 가져다 주게 될 것이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녀에게, 부모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쓰자. 꼭 편지 형식이 아니어도 좋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자.

말로도 좋지만 글로써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자. 절대 부담을 갖지 말자. 연애시절 같이 예쁜 단어 찾으려고 몇 장이나 찢어버리는 수고는 하지 말자. 잘 쓰면 어떻고 못 쓰면 어떠한가? 자연스럽게, 항상 쓰는 말로 진심을 전하면 된다. 길게 쓸려고 노력하지도 말라. 차 한 잔 마시는 마음의 여유만 가지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것이 편지이다. 어차피 우리는 문
학가가 아니다.

사랑이 배어있는 글이면 그것이 바로 ‘은쟁반에 금사과’이다. 사랑의 감정 뿐만이 아니라 섭섭했던 느낌도 편지로 자연스럽게 전하는 글을 쓰는 순간 격한 감정도 완화되고 받는 상대도 상한 감정이 눈 녹듯 사라져 넓은 마음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오늘 차 한 잔의 여유를 갖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 받느니 보다 행복하느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유치환 선생의 ‘행복’이라는 시를 생각하며 봄날에 편지를 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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