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4억 인구의 중국이 해서는 안되는 일

2004-03-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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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 역사교사)

1791년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전권대사 맥카트니가 청 황제에 줄 생일선물을 듬뿍 들고 중국을 찾았다. 뒷문 격인 광동을 거쳐 입국을 허락받은 그의 여행목적은 모직상품 판매를 위한 항구를 얻으려는 것이었으나 청국 황제는 서양 오랑캐가 국호나 왕위를 받기 위해 조공을 바치러 오는 사신으로 알았다.

은화 지불로 중국에서 사들이는 차 소비로 영국은 심한 무역 역조를 보았는데 그렇다고 영국으로선 모직물 외에 팔만한 마땅한 상품이 없었다. 당시 영국인들이 중국차를 어찌나 마셔댔는지 런던 거리에서 은화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조공사는 맞아 보았어도 전권대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청국 관리의 무지로 황제와의 면담은 성사되지 못했으나 그 때까지 ‘잠자는 사자’로 알려졌던 청국이 ‘잠자는 돼지’가 된 ‘아편전쟁’의 굴욕을 영국으로부터 받은 것은 그로부터 38년 후의 일이다.

체면만 유지해 주면 아무 일이나 마다않는 4억 한족을 통치한 황제는 그로부터 천여년 전까지는 고구려의 지배를 받던 만주족으로 이제는 중국에 동화되어 대륙 어디서나 찾아볼 수 없다.

한민족은 전통적으로 문명된 중국인과 주위의 야만족으로 분리(화이론)해 살아 왔다. 대륙의 왕조들만이 문명국이고 주변은 오랑캐에 의한 야만국인 것이다. 조공사가 되기를 거부했던 그 때의 영국 대사도 황제에게는 서양 어디쯤엔가 있는 오랑캐 나라에서 온 조공사가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대국주의는 황제가 누런 옷을 입었거나 요새처럼 붉은 깃발을 흔든
다 해서 차이가 없다.원조의 발상지가 히말라야 산맥이 끝나는 동북쪽지역 산악인인 중국 조상들은 둘러싸인 높은 산을 보며 큰 것에 대한 숭배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평원의 농경민들과 싸우면서 전쟁술을 발달시키고 승자가 되어 돌아온 사람의 허풍이 담긴 얘기에 거창한 주인공을 만들어 기행문, 소설 등의 형식으로 기록한 책을 ‘사기’라 해 후세에 남기는 습성이 몸에 배었다.

인용 자료도 없이 저자들이 전해 들은 얘기를 중국식 뻥튀기로 확대해서 대국주의에 맞게 기록한 것들이어서 그것들은 사료 가치가 없거나 의심스러운 것이 대부분이다.

공산당이 총괄하는 북경의 사회과학원은 이런 류의 고서들을 찾아내어 ‘역사서’로 만드는 일과 그 책 속의 불투명한 인물들을 ‘역사적 인물’로 둔갑시키는 작업이 한창이다. 결과 고구려의 선조는 ‘고대 한족’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한인들을 불쾌하게 하는 이런 주장이 학문적으로 순수하기 보다 당에 점수를 따려는 대국주의 붉은 전사들엔 정치적 역사학자의 입에서 나왔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목적이 깔려있는, 학문과 거리가 먼 이런 주장은 한반도 통일 후 한민족이 되찾아야 할 최소한의 만주땅 ‘간도’지역 환수문제에 연관돼 있는 듯 보인다.

이런 결과는 패권주의와 연결되어 이 지역에 긴장을 고조시켜 중국이 추진중인 근대화 계획에 차질을 가져다 주고 백인들에게는 잊혀져 가는 황화론(The Yellow Peril)’을 다시 되씹게 하는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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