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루치아노 파바로티

2004-03-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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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혜(특집부 부장대우)

뉴요커들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세계 최고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파바로티가 무릎 통증과 비만 때문에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지난 13일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공연을 끝으로 오페라 무대에서의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파바로티는 고르고 큰 성량과 고운 질감에 맑고 깨끗한 고음이면서도 드라마틱한 목소리 때문에 한 세기에 나올까말까한 테너라고 평가된다. 토스카 중 ‘별이 빛나건만’과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그 만큼 달콤하면서도 가슴 저미게 부르는 성악가도 또 있을까 싶다. 그런 그가 메트 오페라에서 퇴출(?) 당하기 앞서 지난
36년간 지켜온 메트 무대를 떠날 것을 선언, 그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2년 전 파바로티가 돌연 취소, 다른 배우로 교체된 ‘토스카’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다.그때 주인공 카바라시역을 맡은 날렵한 몸매의 테너를 보며 ‘거구인 파바로티가 해내기에는 동작들이 다소 무리였겠구나’ 싶었다. 결국 영원한 ‘별’은 없고 ‘해는 언젠가 저무는 이치’를 잘 보여준 셈이다.

이에 앞서 미국의 유명 소프라노 데보라 보이트는 뚱뚱한 몸매 때문에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배역 결정에서 주역을 다른 가수에게 빼앗기게 됐다.

“메트 오페라는 아무리 유명하고 세계적인 성악가라 하더라도 공연이 영 시원찮거나 부진하다면 가차없이 다음 시즌 배역 발탁에서 탈락시키거나 재계약 하지 않는 엄격한 심사제도를 갖고 있다. 오랫동안 메트 무대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고통스러울 만큼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20여년 메트 오페라를 지켜온 한 소프라노가 냉엄한 오페라의 세계를 전해준 말이다.

팬들은 스포트 라이트 받아온 스타들에게서 나이에 관계없이 황금기 때의 모습과 기량을 기대한다. 뭔가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목소리나 동작이 전 같지가 않아 실망감을 느낀 반면 반대로 전혀 기대하지 않고 갔다가 의외로 놀라운 기량에 감탄할 때가 종종 있다.

어찌 됐건 파바로티의 공연을 다음 시즌부터 메트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돼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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