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흔들리지 않는 뿌리

2004-03-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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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자 국내는 물론, 뉴욕한인사회 분위기도 찬반여론으로 뒤숭숭하다. 대통령의 실정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측과 다수당의 횡포라며 탄핵이란 있을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둘로 갈린다. 이렇든 저렇든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태추이를 보면서 대부분의 한인들은 국내정세에 대해 걱정이 태산같다.

한결같이 국가기강 및 사회적 혼란, 민생안정과 경제파탄 등을 염려하며 불안과 우려 속에 이번 사태를 보고 있다. 기실 염려가 될 정도로 지금 한국에는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연일 탄핵안 철회를 촉구하는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를 바라보며 고국의 현실을 가슴아파하지 않을 한인이 어디 있겠는가. 두고 온 내 나라를 우려하고 앞날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사태를 크게 걱정하고 싶지 않다. 아이러니 하게도 한국은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굴러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누구의 책임문제를 떠나서 올 것이 온 것일 뿐이라고 본다. 그만큼 지금까지
비쳐진 고국의 정치상황은 어지러웠다.

정치권이 비리 투성이었고 국정을 다스려야 할 국회의원들이 국정보다는 말씨름과 당리당략에만 혈안이 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결과적으로 대
통령까지 공석이 된 이번 사태는 정치권 모두의 이런 실책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나라의 기둥인 대통령까지 말만 하면 실언의 연속이고 선거법을 위반하면서도 자신을 변론하기에 급급했다. 취임시 약속했던 친, 인척의 비리도 단속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탄핵을 발의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다수당으로서 자격이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들 또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부정부패를 많이 한 국회의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비리를 저질렀다. 게다가 대통령의 발목만 잡고 늘어지며 다수당으로서 횡포를 부린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민생과 복지와 나라의
안녕을 생각하는 분위기는 조금도 없어 보였다. 때문에 나는 이번 기회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누구든 국민으로부터 재신임을 받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탄핵가결의 결과가 앞으로 어떻게 되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대통령이 복직이 되든 파면이 되든 한번은 진통을 겪어야 한다. 잘못은 어떤 식으로든 수술이 되어야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회를 한국이 다시 한번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더 뿌리깊게 정착되는 긍정적인 계기로 보고 싶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언
제나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슬기롭게 대처해오면서 위기를 잘 극복해 왔다.

36년간의 일제 치하를 빼놓고는 지금까지 엄청난 횟수의 외침에도 꿋꿋이 견디며 살아왔다. 그런 속에서 우리나라는 미국과 영국도 200~300년만에 이룬 민주주의를 불과 반세기만에 빠른 속도로 정착시켜 왔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권 모습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것처럼 비쳐왔다. 그러나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은 발전해왔다.

그 원동력은 한국민의 흔들리지 않는 깊은 뿌리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6,25 사변과 같은 잿더미 속에서도 살아남아 세계 제12위 경제대국을 이룩했고 4.19 의거 5.18 항쟁 등을 통해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바야흐로 대통령까지 탄핵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엄청난 민족인가. 이런 대단한 민족이 앞으로 무엇인들 더 못하겠는가. 앞으로 우리는 헌법재판소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지금도 국내는 우려했던 것 보다 모든 부문에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이제는 모든 시스템이 잘 돼 있고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많이 높아져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단계 더 성숙해지기 위한 잠시간의 정체와 휴지기만 있을 뿐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오늘의 이 사태는 다시 한번 정치권이 각성하고 이를 계기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우리국민은 본래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고 아무리 어려워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억새풀 같은 민족이다. 폭풍우, 토네이토, 당할 것 다 당하고 생사람도 잡을 만큼 잡았다. 이제 더 이상의 수난이 뭐 있겠으며 웬만한 어려움은 견뎌낼 체질
을 갖춘 만큼 무슨 걱정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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