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통신기술만 좋으면 뭐하나?

2004-03-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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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 <취재부 차장>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을 접한 11일 저녁, 기자의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미국의 제17대 대통령인 앤드류 존슨이었다.

존슨은 미 역사상 유일하게 미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대통령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대상에 올랐던 닉슨은 탄핵 절차가 시작하기 전 사임했으며 백악관 여성 인턴 성추행 사건에 휘말렸던 클린턴은 탄핵안이 의회에서 부결됐다.)


존슨에 대한 탄핵은 미 상원에서 한 표가 모자라 결국 부결됐지만 그는 미 역사책에서 ‘하원이 탄핵안을 가결시킨 유일한 대통령’으로 남는 수치를 안고 있다. 존슨이 기자의 머리 속에 떠오른 이유는 그가 탄핵이라는 도마에 오른 1868년, 미국의 당시 사회적, 정치적 환경이 노 대통령과 한국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었다.

존슨은 링컨이 암살된 뒤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남북전쟁으로 인해 국민들의 사상과 이념이 둘로 나눠진 시대에 대통령 자리에 오른 존슨은 의회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했다. 그가 추진하던 제도는 의회의 반대에 부딪히기 일쑤였으며 그 또한 의회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응수했다.

대통령과 의회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하원은 존슨이 ‘관직 재직 기간 법
’(Tenure of Office Act)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를 탄핵의 도마 위에 올렸다. 사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하원의 이와 같은 탄핵안은 반대파들의 완연한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이 야당의 정치적 횡포였는지의 사실 여부에 대해 감히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이라는 대사(大事)가 너무 가볍게 여겨지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1868년도의 미국처럼 말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존슨 이후 미국에서 대통령이 탄핵의 대상이 된 사례는 닉슨과 클린턴 등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무단 도청 행위와 성추행이라는 무거운 혐의를 받고 있었다.

2004년도의 대한민국...미 합중국에 정확하게 136년 뒤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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