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인종차별

2004-03-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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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일(취재부 부장대우)

다민족이 모여 살면 인종차별이 있게 마련이다.그런데 인종차별은 여러 얼굴을 갖고 있어 노골적으로 가해지지 않을 경우 좀처럼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성격을 띄고 있다.

특히 인종차별은 가해자의 구체적인 행위, 또는 언행보다는 피해 당사자의 느낌을 잣대로 차별이 가해졌는가의 여부가 성립되기 때문에 가해자의 의도가 없었을 지라도, 아니면 무의식적으로도 행해질 수 있는 애매모호한 정의를 두고 있다.


즉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느끼지 못했을 지라도 내가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느껴지면 나는 인종차별을 당한 것이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내가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점을 주장으로 받아들이지, 사실이라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실체를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연방, 주, 지방 정부들이 모두 나름대로 인종차별을 형사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개인, 또는 집단이 이 법으로 처벌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며 대부분의 인종차별 행위는 피해 당사자가 목소리를 높여 사회적인 차원에서 동감을 얻어내 대응하게 마련이다.

지난달 27일 미 공중파 CBS-TV 방송이 저녁 뉴스시간에 워싱턴 일대 세탁업계 관련 보도를 방영하면서 소규모 세탁업자들이 힘을 모아 부당한 방법으로 대형업소를 몰아내고 있다는 내용을 전하고 소규모 세탁업자들의 ‘컨소시엄’(연합)을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지목했다.

워싱턴 일대 소규모 세탁업계가 대형 ‘드리이클린 디포’의 진출을 반대하고 있고 지역 세탁업계에 한인들이 많이 종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들 세탁업계를 한인들의 ‘컨소시엄’으로 묶어 가르킨 것은 올바른 표현이 아닐뿐더러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워싱턴한인연합세탁협회는 문제의 보도가 한인 세탁업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왜곡된 내용이라며 방송사측에 그 저의를 묻고 나섰다.
이에 미 주류언론사에 종사하는 아시안 언론인 2,000여명을 대표하는 ‘아시안 아메리칸 저널리스트 어소시에이션’(AAJA)는 한층 더 나가서 CBS 뉴스의 방송이 드라이 클리닝 업계 이슈를 보도하며 한인이라는 특정 민족을 분류 지명, 보도한 자체가 한인 세탁업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한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처사임을 지적하고 CBS측의 해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는 문제의 뉴스 보도 대상이 된 한인 세탁업계 관계자들이 피해를 주장하고 이 보도와는 무관한 AAJA라는 단체가 한인들의 피해 주장을 사실로 인정했음은 물론 한인들에 대한 부당한 ‘인종차별적’ 보도 행위로 인해 아시안인 자신들도 피해를 당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CBS 뉴스 보도로 인해 피해 당사자와 그 옆에 서있던 이웃이 피해 사실을 각각 주장하고 사회적 차원에서 목소리를 높여 가해자와 대응하고 있는 만큼 모든 한인들은 그들이 외치고 있는 피해 사례를 주장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사실로 인정할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선택해야 다민족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의 정의를 조금이나마 더 뚜렷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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