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르다’의 고마움

2004-03-08 (월)
크게 작게
허병렬(교육가)

신기하다. 지구 상의 60억이 넘는 인구 중 어느 누구와도 똑같은 사람이 없다(확실성이 있는 가정)는 사실은 신비스러운 현상이다. 앞으로 복제인간이 나오더라도 아주 똑같을 지는 의문이다.

이렇게 넓은 범위가 아니더라도 한 가족의 형제 조차 다르다는 것이 퍽 재미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 자매가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하고 가끔 놀라게 된다. 이런 현상은 과학의 세계를 넘어서는 불가사의한 영역이다.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다른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의 다름은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사람들의 마음만 하더라도 가지각색이다. 어느 일에 찬성한다고 해도 그 정도가 다르며, 거기에는 부수되는 조건들이 따른다. 사람만 다른가.

조선의 영조·순조시대를 살다 간 이옥(李鈺)은 ‘천지민물이란 만 가지 물건이니 진실로 하나로 합할 수 없거니와, 하나의 하늘이라 해도 하루도 서로 같은 하늘이 없고, 하나의 땅이라 해도 한 곳도 서로 같은 땅이 없다’고 말하여 다름으로 형성됐다고 보는 그의 세계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렇듯 모든 것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은가끔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말을 혼동하게 된다. ‘다르다’는 같지 않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 ‘같다’의 반대말이 된다. ‘틀리다’는 계산·일 따위가 어긋나거나 맞지 않다는 듯을 가졌으니까 ‘맞다’의 반대말이 된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흔히 말만 혼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A와 B의 의견이 다를 때 서로 상대방의 의견이 틀렸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 경우 A와 B의 의견이 다르고, 때로는 A의 의견이 옳고, 때로는 B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으니까 틀렸다는 표현 대신 다르다는 표현이 옳을 줄 안다.

그렇다면 ‘다르다’는 것은 혼동만 가져오거나, 복잡성만 초래하는가.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가. 여러가지 다른 의견이 많다는 것은 어느 일을 결정할 때 시간만 끄는 것인가. 민주주의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하여 시간과 정열을 쏟는 소비 극대화의 정책 수립 방법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신장과 체격이 비슷한 규격화 된 사람들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호무당당하게 행진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보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동안에 우리 마음 조차 유니폼을 입게 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런 변화는 다양성이나 다른 의견이나, 다른 몸짓 등이 섞이는 것을 ‘틀리다’고 치부하거나, 지저분하다거나, 시간 허비라고 생각하게 된 줄 안다.


여기서 ‘다르다’는 말이 내재하고 있는 뜻을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은 자연현상이다. 독특한 생명을 가지고 있으니까 다를 수 밖에 없다. 하나도 복제품이 아니라면 똑같지 않은 것이 제각기 가지고 있는 특색이 아니겠는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서로 자극을 한다. 자극을 준다는 것은 서로의 성장을 위하여 필요한 영양소이다. 자극이 없으면 무사 태평을 구가할 것 같아도 그것은 퇴보를 뜻하고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적당한 자극을 서로 주고 받는 일은 세상의 발달에 공헌하는 힘이 된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세상을 풍부하게 한다. 같은 생김새, 같은 생각, 같은 유니폼, 같은 몸짓, 같은 일만 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메운다면 어떨까. 생각만 하여도 아찔하다. 이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은 풍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감사한다. 이런 풍요로운 세상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일부러 다른 사람과 달라지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제각기 타고난 소질을 충분히 발휘하면 자연스럽게 개성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세상은 다양하고 풍부한 삶을 살게 된다.

너와 내가 다른 것, 우리와 저들이 다른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것들은 오직 다를 뿐, 틀린 것이 결코 아니잖은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