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살이에 공식이 있을까

2004-03-0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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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식자들은 인생이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인생살이의 얼굴을 제각기 그려보이면서 공식을 내세우려 한다. 인생의 가치관 마저도 그럴싸한 관념의 말로 이렇다는 둥 저렇다는둥 실행 불가능한 관념의 미학으로 매듭을 지으려고 하고 또한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고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공식 아닌 공식으로 규정을 지으면서 건방지게 사람들을 가르치려 든다. 그 좋은 말들이 모두가 다 관념에 불과하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다 제 이름 높히려는 숨은 작전이다.

인생살이에 공식은 없다. 밑말로 말하자면 그렇게 말하면서 으시대는 식자들은 인생을 몸으로 살면서도, 불로서 뜨겁게 타던 아궁이를 떠나 빈 하늘을 떠도는 굴뚝의 연기처럼 산 몸의 가치를 감춰두고 가면으로 떠드는 헛껍데기의 헛소리일 뿐이다.


인생에 깨우침은 있어도 가르침은 없고 인생살이에 계획은 있어도 공식은 없다. 모든 인생 행로가 스스로에게 달려있을 뿐이다. 정신교육을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내세를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다. 사는 동안에는 오늘이 중요하고 현재가 중요하고 현세가 중요한 것이다.

몸으로 사는 이승살이 참맛을 깨우쳐 알고 인생살이 참뜻을 조금이라도 깨우쳐 안다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 것인가 하는 길이 보인다. 내가 사는 인생은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기 때문에 허울좋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에서 철저하지 않으면 단 한번의 인생을 손해보고 사는 꼴이 된다.

어찌보면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서 몸으로 환생한 우리의 실체는 더욱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짧은 인생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한 관념이 아닌 실체의 몸으로 살아야 한다고 나는 우긴다. 이민을 온 사람이 정신이나 영혼의 수련교육 성공을 위해서 고향을 떠나고 조국을 떠났을까? 이 땅으로 이민을 온 사람들이나 몸으로 이 세상에 잠시 이민을 온 사람들의 우선순위 첫번째는 생활의 성공이다.

장자나 노자의 매끈한 관념의 열마디 말 보다도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옮겨다니면서 구겨지고 눌리다가 등어리가 푸르둥둥하게 된 미국돈 일달러 짜리에 더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몸이 성하면 기운이 나고 생활경제가 실하면 정신적으로도 여유로워져 자비한 마음을 품게 된다. 저 먹을 깡통이 비어있는 거지가 남을 돕겠다는 마음이 들겠는가?

인심이 광에서 난다고 했다. 극락에나 천국에는 광이 없다. 극락이나 천국에는 지천으로 깔려있는 것이 꽃이요 보화요 황금이라지만 먹고 살아야 할 몸이 없으니 먹거리는 없을 것이고, 그러니 이빨로 씹어가며 맛을 즐기는 즐펀한 먹는 재미는 없고 다만 뚫린 귀로 말씀만 얻어먹는 심심한 엄숙함만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현세에서 몸으로 산다는 것은 다시없는 단 한번만의 기회다. 몸으로 부대끼며 말로 부대끼며 눈빛을 부비며 몸내를 부비며 산다는 것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 또 있을까?

관념의 철학으로 인생의 내용을 찾아 헤매이던 철학자들은 길에 쓰러져 하루밤을 지낸 취객보다도 더 불행하게 세상을 살다 갔다. 바람이 울어대는 공허한 소리보다 유행가의 진한 울음소리가 우리에게 더 가까운 것은 인생은 몸으로 살다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나 인생살이를 지식의 미학이나 종교성 철학의 관념으로 풀어줄 수 있고 대신해 줄 수 있는 공식은 없다. 인생은 인생 그대로이고 인생살이는 인생살이 그대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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