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의 일이 아니다

2004-03-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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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병임 칼럼

민병임(편집국 부국장)

뉴욕에서 살다보면 정말로 미국 속에 살고있구나 하고 실감할 때가 있다. 총기사고로 인한 살인과 강도, 방화 사건이 바로 옆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그저 TV나 신문에 대문짝 하게 나온 사건 정도로 가볍게 스쳐지나가지만 이민사회라는 특수상황 속에 있다보니 그런 사건이 일어난 상황을 쉽게 이해하고 깊게 받아들이게 된다.


최근 일어났던 베이테라스 한인가정 화재, 롱아일랜드 시티 총격, 보스턴 MIT 학생 실종 사건들이 있다.

한인들이 많이 몰려드는 지역의 다세대 주택에서 일어난 화재는 세 가정의 어머니와 자녀들이 오순도순 한가족처럼 즐겁게 살던 중 어른들이 없는 가운데 그전날 새로 들인 룸메이트가 저지른 사건이었다.

생활비가 워낙 비싼 미국에 살자니 렌트를 절약하기 위해 방 하나를 서브 리스하기도 하고 룸메이트를 두기도 한다.

그러자니 신원 확인이 안되는 생판 남을 한지붕에 들이기도 하는데 이 사건의 용의자도 외롭고 어려운 이민생활을 견디지 못해 마약을 상습복용해 온 자인 줄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마약복용으로 정신착란상태에서 일으킨 방화는 한 소녀의 목숨을 앗아가고 나머지 소녀들의 가슴에 평생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롱아일랜드 시티 소재 스트립 클럽 앞에서 여종업원이 피살된 사건이 있다.

뉴욕시경에 의하면 퇴근 후 업소 앞에서 범죄대상이 아닌 다른 사람을 겨냥해 쏜 총탄을 맞은 것이라 한다.

누구나 쉽게 총을 소유하는 미국에 사는 한 맨하탄, 브롱스, 브루클린, 어디라도 안전한 곳은 없다.


우리들은 사건 당일은 흠칫 놀라지만 그 다음날로 사건이 발생한 그 앞을 무심히 지나서 커피를 사러가고 전철을 타러 간다. 핏자욱이 채 마르지도 않은 보도를 모르는 척, 아무렇지도 않게 제 볼 일을 보러 간다.

바로 어제 사람이 죽어나갔는데도 그 무감각, 무감동 하는 나 자신이 끔찍하지만 우리는 또 이런 사건마다 민감하게 반응하며 ‘무서워, 무서워’하면 뉴욕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그리고 지난 12월5일 실종되었다가 얼음이 녹은 찰스강에서 사체로 발견된 보스턴 MIT 한인학생, 그 사인이야 본인만이 정확히 알겠고 우리들은 그저 짐작할 뿐이지만 자녀를 둔 한인 부모들은 제일 먼저 ‘참으로 안됐네’하고 가여워했을 것이다.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그 어려운 대학에 들어갔으며, 난다긴다하는 전세계 수재들이 경쟁하는 와중에 공부하느라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과가 신통치 않다면 그 열등감을 어찌 달랠 것인지, 이런 사건을 대할 때마다 집에서 멀리 있는 대학에 자녀를 보낸 부모들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이런 일들을 대할 때 참으로 세상살이가 쉬운 것이 아니구나 싶다. 어느 인생이든 그저 살아지는 것은 없고 남들이 보기에 무난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조차 속으로는 힘들어, 정말 힘들어하며 사는 것이다.

때로 사는 것이 힘에 벅차고, 구차하고, 도망가고 싶고, 포기하고 싶지만 이래저래 인연이 얽혀 그것조차 여의치 않으니 어쩌겠는가. 같은 미국 하늘 아래 살고 있는 한인들끼리 서로 어깨를 다독거리며 살아가는 수밖에.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나 작은 일이라도 함께 나누며 서로 돕고 즐거움을 함께 만들어가며 사는 것이다.

하다못해 이웃이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끼리 필요시 서로간 집안 일을 돌봐주고 아이를 데려다 밥을 먹이고 돌봐준다면 어떤 불상사도 막을 수 있다. 밖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볼 때도 ‘누가 부모인지 쯔쯧’ 하고 혀를 차기 전에 그 아이의 부모 심정으로 올바로 인도한다면, 말이라도 한마디 따뜻하게 건네준다면 훗날 한인사회를 위해 일할 훌륭한 젊은이 하나를 잊어버리는 일은 없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충격적인 일들이 지금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고 수수방관할 것이 아니라 ‘남의 일이 아니다’ 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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