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가 가진 자산

2004-03-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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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숙(프린스톤 한인장로교회 전도사)

지난주 토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우들과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친교시간에 최근 한인사회에 일어났던 참담한 비극적 사건을 두고 모두들 마음 아파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한인사회에 뿌리 박혀있는 비교의식과 질투심에 관해 화제가 모아지게 되었다. 마치 우리 민족의 체질을 상징하는 듯한 너무도 익숙한 속담인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의 설득력을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왜 우리 한인들은 주위의 지인이 잘 되면 진정 기쁜 맘으로 축하해 주지 못하고 자꾸 허물을 캐고 수근거리며 그 앉은 자리에서 잡아내리지 못해 안달을 하는 것일까 하고 의구심 반 자숙 반 안타까워들 하였다.


그 때 난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아마데우스 모짜르트’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모짜르트의 예술적 천재성을 간과하고 시기하여 상대적 열등감에 사로잡힌 한 궁정 악장이 천재 피아니스트의 대내외적 곤궁과 불안과 번민을 이용하고 교묘하게 유인하여 끝내는 파멸로 몰고가는 가상적 심리적 교살을 그린 내용이었다고 기억한다.

최근에 우연히 본 어떤 단막극의 비디오도 동일한 심리적 가해를 주제로 한 내용이어서 매우 오래 인상깊게 뇌리에 남았다.어려서부터 형제처럼 죽마고우로 자라온 두 친구가 있었는데 갑은 을보다 사고력과 행동력에서 더 뛰어난 청년이었다.

갑은 늘 내성적인 을을 진정 사랑하고 항상 배려하고 돕는 자세로 우정을 키워나갔다. 같은 학교를 거쳐 같은 직장에 입사하여 생활하던 중 을이 내심 연모하던 여인과 갑이 약혼을 발표하게 된다. 을은 상사와 공모하여 부정을 저지르고 갑에게 교묘히 죄를 뒤집어 씌워 갑은 청천벽력처럼 약혼식장에서 울며 달려오는 약혼녀를 뒤로 두고 연행되어 긴 세월 옥고를 치르게 된다.이 때부터 보란듯이 을의 갖가지 복수극(?)이 벌어지게 되어 끝내는 관계와 자신의 파멸을 맞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극중에 일그러진 표정의 을의 독백이 이채롭다. “너는 항상 나를 도와 왔지만 늘 너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나에겐 썩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었어”
이렇게 가까운 지인을 아무런 이유없이 증오하고 파멸을 서슴치 않고 해하려는 악의를 품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엔 심리적인 이유가 있다. 상대가 있음으로 해서 내가 못나 보인다는 이유, 상대의 존재로 인해 나의 존재가 위축된다는 느낌 - 이로 인해 상대에게 심리적 거부감을 느끼며 깊이 미워하는 것이다.

즉 비교심리로 인한 열등감이 주범인 것이다. 이러한 비교심리는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한없이 경쟁적으로 몰아가고 배움의 연륜과 관계 없이 철학
의 빈곤을 낳는다. 상황에 따라 늘 상대적인 충족감과 빈곤감을 저울질하기 때문에 삶의 지경을 넓혀가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협동가 수용 보다는 경계와 반목의 풍토를 조성한다.

이러한 상대적인 가치관을 갖고있는 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 지속적인 만족과 기쁨을 누리며 남에게 미덕을 베풀고 살아갈 수 없을 뿐더러 조화되고 균형있는 인격의 향취를 지니기 어렵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말하길 그는 풍부하나 미진하나 궁핍하나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였다. 절대적 신과 나와의 절대적 관계 속에서만이 우리는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절대만족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스스로 누릴 뿐만 아니라 나눔으로 더욱 내 안에서 고갈되지 않고 풍성하여진다.

이럴 때 우리는 표면적이고 외형적인 상대의 모습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상대의 곤궁한 모습을 볼 수 있기에 강요하 억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남을 사랑하고 격려하고 세워주는 마음을 품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어려서부터 자녀에게 심어주어야 할 가져야 하고 가질 수 있는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값진 자산이며 이것을 자산으로 키워나갈 때 우리의 미래는 더욱 활기있고 격조있게 우리의 성장한 자녀들을 두 팔 벌려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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