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봉제업계의 딜레마

2004-03-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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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열(취재부 차장대우)

“지금으로선 묘책이 없어요.”
원자재 값은 줄줄이 뛰고 제품값은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봉제업계 C사장의 말이다. 다른 업체에 물어봐도 “속수무책”이라는 답만 돌아온다. 그렇다고 해외로 눈을 돌려봐도 이미 중국이나 인도 등 동남 아시아국가에 시장을 빼앗긴 상태다.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생산량을 줄이면 될 것 아니냐는 교과서적인 조언도 봉제업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산업 특성상 생산량만 줄이면 채산성이 더욱 악화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남미국가들과 관세 철벽을 주요 골자로 하는 자유무역협정을 잇달아 체결함에 따라 대형 원청업자들이 아웃소싱 바람이 불면서 봉제업체들의 경쟁력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한인 봉제업체들은 지난 수년 동안 절반에 가깝게 문을 닫아야만 했다. 눈치 빠른 일부 회사들은 이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이미 봉제업에서 손을 땠다. 하지만 남아있는 이들의 고민은 커져만 간다. “도망칠 타이밍”을 놓쳐버린 탓이다.

그렇다고 사업을 팔아 넘기기에는 그동안 투자했던 비용을 감안하면 손해가 너무 크다. “해결책은 고부가가치 제품이다”라는 구호도 효과가 없다. ‘어떤 제품’이 잘 팔린다 싶으면 너도나도 뛰어드는 게 뉴욕일원 봉제업계의 생리여서 얼마 가지 못해 공급과잉 상태로 몰리고 있다.

봉제업계에선 너도나도 “바뀌어야 산다”고 외친다. 그러나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돼 왔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선진 시스템 도입“, “새로
운 수익 아이템 개발” 등의 숙제부터 제대로 풀었는지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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