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고

2004-03-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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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요즘 미 전역에서 상영중인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이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다룬 영화는 많았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하는 마지막 순간에 같은 민족인 유대인이 보여준 잔학성이 너무나 처절하게 그려져 전율을 안겨다 준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반 유대인 감정을 가질까 두려워 크게 반발하고 있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것은 기독교인이든, 비 기독교인이든 성경적으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영화에서의 문제는 예수가 유대인으로부터 당한 고초를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그릴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때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유대인이 예수에 대해 그런 형벌을 가했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많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영화에서 그려진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 엄청난 구원의 피를 흘렸다. 그런데 요즘 기독교인들은 신앙생활을 얼마나 편하고 쉽게 하고 있는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거늘 과연 지금의 종교인들은 얼마나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이제 목사직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남을 위해 고뇌하고 고통받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대접받는 직업으로 처녀들의 제일 가는 신랑감 후보로 군림하고 있다 한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 좋은 것을 많이 누리고 살아 선지 그 속에서 할 바를 모르고 사는 때가 많다. 아니 오히려 부족하다고 불평을 하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한다. 물질과 자유, 그리고 축복을 얼마나 받았는지 실감을 못하고 있다. 그 고마움과 기쁨은 공산주의 국가에 가면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수용소에 가면 탈북자들의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이
었나를 알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안일하게 살고 있고, 또 억압 상태를 경험하지 않아 자유의 참 맛을 모르고 있다. 먹을 것도 너무 풍부하면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제대로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중동에 가면 고급카펫을 7, 8살 짜리 고사리 손을 가진 어린아이들이 하루 몇 끼 겨우 얻어먹고 만들어내고 있다. 또 방글라데시에는 학교에 가야할 어린이들이 눈만 뜨면 먹는 것을 사는데 필요한 1달러를 벌기 위해 40도가 넘는 불볕 더위 아래서 종일 벽돌을 망치로 깨뜨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구상에는 전세계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12억명의 인간이 하루 1달러로 생계를 해결하는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한다. 기아의 대표적인 북한의 현실은 끊임없이 북한을 탈출하고 있는 수많은 난민들의 실태가 잘 입증해주고 있다.


멕시코,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도 IMF 이후 엄청난 실업자와 파산으로 빈곤자들이 수 백만 명씩 생겨났다. 전세계에서 가장 부강하다는 미국에도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받은 물질에 대해 고마움을 못 느끼고 오히려 남용하고 있다.

TV에서 방영하는 동물의 왕국을 보면 새나 동물, 바다 물고기가 새끼를 위해 헌신하고 죽는 것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하다못해 연어 같은 물고기도 알을 까고 자신은 죽어버리는 것을 본다. 그렇거늘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식을 위해 죽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이란 이 영화는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느끼고 깨달아야 할 점을 새롭게 인식케 한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 가를 깨닫게 하고 비신자는 비신자대로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한다.

어떤 이유이건 간에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예수의 극단적인 처절함은 인류에게 또 한차례 충격파를 던진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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