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슬픔에 찬 기쁨(Sorrowful Joy)

2004-03-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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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부 장관을 지낸 정근모 박사가 오래 전 이곳에 살 때, 함께 교회생활을 했었다. 가끔 그 집에 심방 가곤 했는데 아들이 신장이 나빠서 맘 아파하곤 했었다.

그 후에 아버지가 신장을 하나 떼어서 아들에게 이식시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장기 기증협회에 적극 참여해 아직까지도 기증운동에 앞장서고 있다.또 옆집에 10여년 함께 살던 P선생님은 그 부인이 신장에 문제가 생겨 신장 하나를 이식시켜 두 분이 오손도손 함께 삶을 영위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몸의 일부를 떼어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깊이 생각해 봤다.

얼마 전, 한국에서 두 딸이 간경화로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에게 간을 기증해 20여시간 두 딸의 간 일부를 이식 시키는데 성공해 주위를 훈훈하게 해 준 일이 있다. 아버지의 수술로 빚을 짊어졌지만 “거져 받은 사랑 거져 드려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한 딸들의 사랑이 맘에 와 닿았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것, 그리고 부부간에 주는 것 보다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것은 더 어렵고 귀한 만큼 더 아름다운 것 같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귀한 것은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게 신체의 일부를 떼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년여 전쯤 시카고의 한 루터란교회에서 신장이식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젊은 청년이 있었는데 교회 목사님의 호소로 여러 사람이 자원을 해서 검사결과 한 중년부인이 매치가 되어 신장을 떼주어 수술에 성공해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던져줬다.

잘 아는 미국부인은 89세인데도 적십자사 혈액은행에 20년 자원봉사하면서 스스로도 수도 없이 헌혈을 해왔는데 아직도 건강하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10년 전 롱아일랜드 열차에서 6명을 사살하고 19명을 다치게 한 끔찍한 총기난사 사고가 있었다. 그 중에 중상을 입고 5일간 살다가 끝내 숨진 27세의 애미 훼데리코의 부모는 그 슬픔 중에 모든 딸의 장기를 기증키로 결정내렸다.

지난 12월, 70세 생일을 맞은 테레서 카라벨라는 애미의 심장을 받아 10년을 살아온 것이다. 매년 어머니날에는 어김없이 애미의 어머니에게 꽃다발을 보내면서 “사랑하는 애미의 심장으로부터”라고 써 보냈다고 한다. 70세 생일에 초대된 애미의 부모는 Sorrowful Joy(슬픔에 가득 찬 기쁨)이라고 한 마디 감회를 피력했다.

애미의 부모는 그 일로 인하여 장기기증운동에 적극 참여해 각급 학교와 단체를 방문해 자기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애미는 없지만 테레사가 살아있음을 보는 기쁨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며 장기 기증을 권장하고 있다.

애미의 신장 2개, 간, 안구, 심장 등은 여러 사람의 생명속에서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 성경말씀에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실천 없는 사랑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받는 자 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나는 이웃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주면서 살아왔으며 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내게 필요 없는 것을 주는 것은 주는 것이 아니고 내게 꼭 필요한 것, 없으면 힘드는 것을 떼서 나누어주는 것만이 진정 주는 것일게다.

내 피가 필요한 곳에 피를 나누어 주자. 내 먹는 것을 떼서 굶주리는 자들에게 보내야 한다. 내 장기도 기증 약속을 해서 애미의 부모들처럼 슬픔에 찬 기쁨이 여기 저기에 번져나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박중기(롱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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