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슬픔의 축제

2004-02-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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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는 것으로 생이 마감 된다. 꽃다운 나이에 시집 와서 한평생 온갖 비극적인 삶을 다 겪고 늙어서는 치매에 걸려, 중견작가로 성공해 서울 사는 아들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세상을 뜬다.

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모여들면서 조용하고 어쩌면 평화로와서 슬프기까지 한 마음에 갈등과 미움과 사랑이 뒤범벅이 되면서 장례식을 치루는 집안이 난장판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고인을 위한 집계는 철저하리 만큼 법도에 어긋남이 없이 진행되면서 이 소란스럽고 가슴 아픈 장례식을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의 얘기다.

한국문화원과 현대미술관이 힘을 합쳐 임권택 영화제를 열면서 첫 작품으로 선택 되었는데 나는 이 축제에 참가할 수 있었다.나는 굶주린 사람처럼 그의 영화를 보러 다녔다. 나는 그의 영화를 보고나서 아픈 가슴을
쓸고 눈물을 글썽이며 극장을 나서곤 했다.


권력에 희생당한 사람, 사회 제도, 이데올로기, 경제의 불균형, 특히 폭력적인 남성에 희생당한 여성의 얘기가 많고, 그래서 우리 속에 숨어있는 한을 얘기한다.한편으로는 너무 거칠고, 너무 솔직해 동대문시장이나 자갈치시장을 다녀온 듯 가슴 아프고 혼란스러워진다.

나는 어린 시절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삼류극장에서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흰 눈 덮힌 만주 벌판에 말을 달리며 독립운동 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감동 깊게 보았고, 마지막 장면에 두 남녀가 자유를 찾아 노를 저어가며 ‘둘이 함께 저어가자’는 여자의 대화가 지금도 참 좋게 느껴진다.

영화를 꽤 좋아했던 어린 시절, 화면에 비가 줄줄 내리는 다 낡은 외국영화를 삼류 극장에 잠입해 보곤 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지금은 뉴욕에 살고 있다.외국 영화에는 야한 장면이 있게 마련이고, 학생 입장 불가라는 검은 글씨의 현판이 극장 입구에 걸려있고, 누구 누구가 영화를 보다 잡혀갔느니, 누가 정학을 받았다느니 하는 소문 때문에 죽을 각오로 영화를 본 셈이다.

내가 오래된 외국영화를 어린 나이에 보았듯이 최첨단의 뉴욕에 살면서 한국영화 접하는 것은 그 때나 다름 없이 때늦은 영화를 보게 된다.한국 영화배우들이 누가 누군지 감감하고 ‘실미도’며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아주 큰 성공을 거두고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고 신문에서 읽지만 그 영화를 같은 시차로 보는 것은 요원한 듯 하다.

뉴욕지역에 한국인이 소도시 정도의 인구는 되지만 아직도 한국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어 흥행을 거두려면 한국인들의 뜨거운 동참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국의 드라마틱한 역사와 소재는 젊은 감독들에 의해 숨막히는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아시아에서 ‘한류’ 열풍이 뜨겁다는데 뉴욕에 사는 우리들은 언제나 한류에 동참하게 될까?

박상원(국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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