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흑인역사의 달

2004-02-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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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벌써 다 지나가고 있다. 매년 2월이면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이라고 지정되어 있어 흑인에 관계된 여러 분야의 세미나, 연구발표회, 특별 전시 등 행사가 있다. 이 중 관심있는 행사에 참여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미국에 살려면 흑백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알아야 할 것이다.
흑인 인구는 지금 미국 총인구의 11%를 초과했고 재계나 전문직은 물론 정계에도 소리가 점차 높아가고 있다. 정부에도 장관 자리를 여러 곳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링컨대통령이 1863년 1월 1일자로 역사적인 노예 석방 공고를 한 후 10년이 지나지 않은 1870년에 미시시피주에서 처음으로 흑인이 미상원의원에, 같은 해 조지아주에서는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후 버지니아 주지사에 흑인이 처음으로 당선돼 미국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남부지방은 흑백의 차별이 철저했고 법으로 제정돼 행정기관에서 강력히 시행해 왔던 곳이라서 더욱 놀랐다. 학교, 교회, 식당, 시내 버스 등은 흑백이 구분되었고 공원에 들어가는 것은 자유였으나 흑인용 수도물도 구분되어 있었다. 흑인 아이들은 그 안에 시설된 놀이터에 들어갈 수가 없었
다.

뉴욕, LA의 양대 도시 시장직에 흑인이 들어서서 일을 잘 해 낸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 외 전문직에 종사한 흑인들의 훌륭한 공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연중행사인 2월 흑인역사의 달에 참여하여 이해를 증진하는 수 밖에 없다.

브루클린에서나 LA에서 발생했던 불상사를 계기로 흑인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가를 알아야 하고, 우리도 흑인에 대한 이해를 더욱 증진시켜야 할 것이다.

흑인역사의 달이 오면 두사람의 기억이 새로워진다. 첫째는 미독립선언문(1776년 7월 4일)의 초안자이며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이다. 제퍼슨에게는 사랑한 흑인노예 처녀 샐리 해밍스(Salley Hemings)가 있었고 이 둘 사이에 아들 딸도 있고 그 후손이 오늘날은 수백명이 된다고 한다.

이들 후손이 제퍼슨 종친회격인 몬티시로회( Monticello Association)에 가입을 열망하고 자기의 선조가 제퍼슨이란 사실을 종친회에서 인정해 주기를 바라면서 DNA 조사결과를 제시했던 적이 있었다.

미 독립선언문 첫 장에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로부터 확정된 나눌래야 나눌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는데...이하 생략”라는 철학적이며 가슴에 닿는 명문이 있다.

흑인처녀 해밍스가 피부가 흑색이라서 억울하게 처신해야 했던 그 당시 사회제도의 모순과 그에 대한 자기의 사랑이 담겨있는 느낌이 있다.제퍼슨 동상이 워싱턴 포토맥강변에 높이 서 있다. 때가 되면 벚꽃 구경꾼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그 동상을 여러번 찾은 적이 있고 그 흑인여자 생각에 잠긴 적이 있었다.


또 한 사람은 작년 6월에 100세까지 살고 간, 미남부의 저명한 정치인이며 1948년에는 대통령 출마도 했고 미상원의원을 48년이나 했던 스트롬 더몬드(Strom Thurmond)다. 작년 말 LA에서 은퇴한 한 할머니 선생이 ‘우리 아버지는 정치인 더몬드였다’고 처음으로 공개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1925년부터 흑백의 구분이 법적으로 제도화 되었고, 빈틈없이 시행될 때였다. 더몬드는 교사부터 시작해 주지사, 상원의원이 되었는데 집에 있던 어린 흑인 가정부와 관계를 맺고 딸 하나를 두었다. 그 딸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학비부터 모든 생활비를 지원해 주었으나 정치인으로서 철저히 흑백 구분을 정치생명으로 삼았다.

선거 때는 흑백 차별을 크게 내걸고 많은 표를 얻었으나 사적으로는 숨겨둔 흑인딸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 딸도 백인 정치인인 아버지를 사랑했고 아버지의 정치무대를 더욱 강화시켜서 정치적 야망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돕기위해 끝까지 숨어있었다고 하니 존경할 따름이다.

남부 사람이 부르는 딕시랜드(Dixieland) 노래는 우리가 말하는 한이 맺힌 노래이고 Dixie Yankee의 뜻을 다시 알게 되었다. 우리도 대 흑인문제에 관심을 두고 더욱 이해를 증진시키면 좋겠다.

김옥(플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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