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양성의 중핵

2004-02-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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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은 누구이며, 지금 그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한민족은 한족(韓族)을 말하며, 한반도를 중심으로 남만주 등지에 걸쳐 사는 종족. 퉁구스 계통의 몽고 종족으로, 중국 북부를 거쳐 이동해 온 것으로 추정됨. 배달민족. 이것이 사전에 있는 한민족의 정의이다. 이는 바로 우리들을 말한다.

그렇다면 한민족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세계 방방곡곡에 널리 흩어져서 살고 있다. 한민족이 살고 있는 국가의 수효가 142개국이라고 하니까 유엔 가입 국가 수의 3분의 2를 넘는다. 중국인과 유대인은 90여개국에 퍼져 있다고 한다. 한민족은 그보다 훨씬 넓은 세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우리의 선조들은 힘차고 씩씩하게 뻗어 나아가는 웅비정신이 있어 생활권을 넓히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다. 이런 일에 제약을 받게 된 것은 당시의 국제 정세와 교통의 불편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제각기 주거지를 옮겨다니며 생활하게 되었고, 여기에 활발하게 참가하고 있는 것이 한민족이다.


현대인에게는 국경의 울타리가 점점 낮아지는 것을 느끼게 한다. 본래 울타리란 뛰어넘고 싶은 마음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한민족이 생활권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한민족의 구성 인원이 다양성을 띠게 된 것은 자연현
상이라고 하겠다. 그들은 제각기 현지화하여 생활 양식을 달리 할 뿐만 아니라 자칭 타칭의 특색있는 호칭을 가지고 있다.

구소련에 속했다가 독립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내의 한인들은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남북한 사람들과 왕래하며 대화할 때 독립적인 ‘고려인’이란 명칭을 가지게 된 것은 그들의 지혜이다. 재중동포는 조선족, 남한의 한국인, 북한의 조선인, 재일동포, 재미동포, 재독동포... 등 명칭이 세분화되어 제각각 특색이 있음을 본다.

이렇게 넓게 퍼져서 사는 데 따라 어떤 장점이 있을까. 첫째, 한민족의 시야를 넓힌다. 둘째, 다른 문화와 접촉하면서 그 다양함을 이해한다. 셋째, 한국문화를 소개한다. 넷째, 다채로운 친구를 사귄다. 한민족의 삶의 터전과 한국 문화권을 넓힌다... 등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 반면, 넓게 퍼져 산다는 것이 쉽게 분산현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또 현지 동화작용이 때로는 정체성 상실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래서 해외 거주 700만 한민족은 다양성에 가려진 중핵(中核)을 간직해야 할 줄 안다. 여기서 말하는 중핵은 한국문화이다. 한국문화를 지킴은 한민족의 정체성 확립의 기반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두 겹의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한민족의 정체성이고, 다른 하나는 거주하는 현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말한다.

해외 거주 한민족의 힘을 극대화하는 길은, 흩어져 있는 힘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하나 하나의 힘은 약하지만 재외동포 모두의 힘은 엄청나다. 한민족 공동체의 힘은 위대하다.

우선은 마음을 모으고, 경제적으로 상호 협조한다면 명실공히 한국의 재외 자산이 될 뿐만 아니라 해외 거주민의 긍지를 높게 할 것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일련의 활동이 개인에게 값진 삶의 뜻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삶의 보람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2세들에게 어떻게 이런 과정을 밟게 하느냐는 점이다. 어린 그들은 쉽게 현지화하며, 그들이 가지게 되는 실용주의는 당장 효과가 나지 않는 일을 기피하며, 현지문화 생활에 익숙한 그들은 한국문화의 깊은 뜻을 따분하게 생각하기 쉽다.


이런 2세들에게 한국문화를 체험시키고 이해하도록 도와서 고유의 문화를 사랑하고 이어나가게 한다면 재외동포의 힘은 배가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궁극적으로 그들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이 요원한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일세들의 인내심과 끈기가 요구된다. 기회 있을 때마다 고유문화에 접하게 하고 그들과 같이 즐기는 동안에 우리 문화의 향기가 스며들 것으로 안다. 서적을 읽고 문화를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장성하였을 때 적합한 방법이다.

어렸을 때는 체험을 통하여 색다른 감흥을 일으키며 이해시키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허병렬(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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