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문화행사 동참하고 우리문화 창달하자

2004-02-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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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스 데이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를 기리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선물을 주고 받으며, 연회석에는 빨간 옷을 입고, 이 날 만큼은 여자가 먼저 구애를 하여도 괜찮다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즐거운 날이 실제 알고 보면 발렌타인 성인이 회당에서 몽둥이로 맞아 죽은 날로 애잔한 날이다.3세기 중엽 로마 교회에서 가장 인망이 높고 덕행으로도 출중한 발렌타인을 글라우디노 황제가 그에게 배교를 명했으나 순종하지 않으므로 그를 로마시장에게 보냈고, 시장은 또한
그를 법관 아스데리오에게 인도하였다.

그런데 그 법관의 딸이 2년 전부터 소경이 되어 있는 것을 본 발렌타인 성인이 눈에 손을 대고 기도하니 딸의 눈은 즉시 완치되었다고 한다.
이런 신기한 일을 친히 목격한 법관은 즉시 일가족 40명과 같이 모두 성인의 손에 세례를 받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황제는 대노하여 병졸들을 파견, 법관을 참살했고 발렌타인 성인은 몽둥이로 때려 죽인 날이 서기 270년 2월 14일이었다.


이곳 로렌스시 시니어센터에서는 해마다 성대한 파티를 해 왔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한국사람은 늘 나 혼자라서 서먹했지만 금년에는 우리 한인노인회 회원들이 부부동반으로 23명이 참석하였다.

센터에서는 우리들을 친절히 대하여 메인테이블 3개를 할애해 주었는데 우리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식탁에 비치하여 꽃과 풍선과 함께 어울려 더욱 보기에 좋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끝내고 오락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사교댄스와 라인댄스에서는 손에 손 잡고 춤을 추었는데 우리 여자들의 한복이 퍽이나 돋보여 미국사람들은 ‘뷰티풀’을 연발했다.

드디어 우리 한국사람들을 위한 시간이 주어졌는데, 아리랑, 도라지타령에서부터 서울의 찬가를 신나게 부르며 우리 고유의 춤을 여럿이 나가 멋지게 추는 광경은 실로 우리 문화를 소개, 박수갈채를 받았다.

끝으로 나는 6.25참전용사 제복 차림으로 “반세기 전 6.25전쟁 당시 미국이 우리를 돕지 않았으면 우리나라는 공산국가가 되어 오늘의 번영이 없었을 것이며, 나는 벌써 죽어서 이런 파티에도 참석치 못했을 것”이라고 간단한 스피치를 하고 감사했더니 또 박수갈채를 받았다.

미국문화행사에 동참하고 친교를 이루며 우리 문화를 창달한 셈이다.
글라우디오는 미운 발렌타인을 폭력으로 죽였지만 이제 발렌타인 성인은 사랑의 표상이 되었으니 정말 패러독스다. 예수님을 닮은 큰 사람이었다.

이 노인센터에 존 노인은 75살이었는데 무슨 행사에든 꼭 참석했음은 물론 4년 동안 매일 아침 8시에 나와 노인들이 마실 커피를 끓이는 봉사를 해 왔는데 한달 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막차를 타고 하늘나라로 갔다. 오늘 만나지 못한 이름 없는 성인이다.


인생은 요람에서 무덤 사이에 있다. 파티가 끝났지만 가지 않고 삼삼오오 앉아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저녁을 기다리고 내일을 기다리고, 봄을 기다리며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옛날 어려운 시대에 성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본받고 어려운 이민생활 속에서 견인하며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을 생각해 보자.


강경신(보스턴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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