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가 몰고온 봄바람

2004-02-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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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레인저스의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가는 세로 줄무늬 양키스 유니폼을 입었다. 등판 번호 13번을 달고 양키 스테디엄에서 한차례 돌풍을 일으킬 차비를 하고있다.그가 텍사스로부터 몰고온 훈풍은 눈보라와 매운 추위, 불황으로 찌들린 마음을 한방에 몰아내고 화사한 봄이 화악 피어날 것을 기대케 한다.

메이저 리그 사상 최고의 몸값을 받은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17일 양키 스테디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 토레 감독, 주장 데릭 지터와 나란히 서서 월드 시리즈로 향한 행진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양키스는 천하무적이 되겠구나 싶다.그런데 야구는 비슷한 실력의 라이벌이 붙어야 재미가 있는 것이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무너지면 별로 보고싶은 마음이 없다.

미국에 온 이래 가장 재미있게 야구를 본 해는 1999년 아틀란타 브레이브스에게 내셔널 리그 챔피언 자리를 놓친 메츠가 절치부심 끝에 2000년 마이크 피아자의 역전 홈런으로 브레이브스를 격파하여 내셔널 리그 승자가 되고 아메리칸 리그의 승자 양키스와 맞붙은 월드 시리즈 때이다.


양키스와 메츠 두 구단이 내가 살고있는 뉴욕 소재 구단인 것이 자랑스러웠고 언제나 일등으로 달리는 양키스보다는 좌충우돌 하는 메츠를 열심히 응원했었다.월드 시리즈 3차전이 열린 셰이 스테디엄 앞에는 하얀색, 보라색 리무진이 구장 주변에 진을 쳤고 1회초 첫번째 타석에 선 데릭 지터가 방망이를 잡자마자 때린 공이 깨끗한 홈런을 날렸다. 시애틀 매리너스 팀원으로서 경기를 마치고 관중석에 앉아있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놀라서 커다란 입을 딱 벌렸었다.

드라마 같은 명승부를 기록하며 파죽지세로 밀고 나가던 메츠의 기를 탁 꺾어버린 양키스가 월드 시리즈 우승 문턱으로 가게 한 그 볼을 보며 로드리게스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즈음, 그는 왜 우승 확률이 높은 팀으로 가지 않고 젊은 사람이 돈에 먼저 정신이 팔려서 서부지구 최하위 성적을 기록하는 텍사스 레인저스로 가나하고 의아했었는데 지난 17일의 기자회견에서 “내 야구인생에서 승리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우승 가능성 높은 팀에서 뛰겠다”고 말하니 그때는 아직 때가 아니었다 생각했나보다 싶다.

프로야구가 기지개를 켜면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고 대개 10월의 마지막 주까지 인생을 즐겁게 한다는 뉴요커들이 많다.자신이 선호하는 팀을 응원하며 손에 땀을 쥐는 짜릿한 긴장감,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열정 등등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하다 그해 프로 야구가 막 내리면 앞으로 무슨 재미로 사나 하던 사람들, 이제 로드리게스의 양키스 입단에 벌써 봄이 온 것 같을 것이다.

한겨울 폭설과 혹한에 시달린 우리는 이제 더이상 추위는 사양한다. 눈소식도 사절이다. 떨리는 뒷등을 포근히 감싸줄 따스한 봄햇살이 필요하다.
그런데 야구를 보면서 말이지, 어느 책에선가 읽은 이런 말에 공감한 적이 있다.“야구에서의 홈런은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공 하나에 온 정신을 집중시켜 쳐낸 홈런은 선수가 오랜 시간 간절하게 원하고 노력했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홈런을 쳤다해도 베이스를 밟지 않고 그냥 지나치면 그 홈런은 무효가 되고 그 선수는 아웃 처리가 되는 것이 야구의 기본 룰입니다.야구처럼 인생에도 기본 룰이 있습니다. 야구선수가 홈런을 친다해도 베이스를 꼭 밟고 지나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반드시 밟고 지나가야 하는 베이스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련과 실패, 좌절과 노력이라는 베이스입니다. 그 베이스를 지나온 자만이 홈베이스를 밟을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생에서도 배경과 돈으로 홈런을 칠 수는 있지만 시련과 실패, 좌절과 노력이라는 베이스를 밟고 오지 않은 홈런은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고 결국에 가서는 패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본 룰이 있기에 야구도, 인생도 우리가 진지하게 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요.”


민병임(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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