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국의 휴양지에서 만난 사람들

2004-02-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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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잉카 유적지를 둘러보고 돌아온 남편을 보는 아내의 모습은 예전과 같질 않았다. 남편의 전공이 역사여서 그 사이 관용으로 대했지만 몇번만 있는 일도 아닌데다 큰 일이나 한 것처럼 필름통만 잔뜩 들고 돌아온 남편이 탐탁하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불혹의 나이를 끝내가는 여인이 거울 앞에서 더 타야 할 검은 부분이 아직 남아있는 타다 만 연탄재 같은 자신을 보며 우울해 하는 모습이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이런 울적한 마음을 안아주려는 나의 죄책감은 아내가 50세 문턱에 접어드는 해에 남국 휴양지를 함께 찾는 여행의 길로 인도해 주었다. 그 후로부터 뉴욕에 매서운 추위가 찾아올 때면 전쟁의 와중이
거나 테러의 공포가 엄습해도 우리의 여행 계획을 변경시키거나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남국에 대한 노스탈쟈, 그리고 그 많은 추억들... 연륜이 더해지면서 한인 여행객들이 늘어나 요사이는 어디서나 마주치는 기회가 부쩍 늘었다. 단체로 온 한인들이 골프 차림새로 아침식사 하는 모습이 아내의 어깨 너머로 보인다. 떠들썩한 분위기로 몰려다니면서 같은 관광객에게도 불편을 주고 현지인에게도 또 얼마나 불평을 살까 염려까지 든다.


얼어붙은 뉴욕을 떠나 우리 부부처럼 골프를 즐길 목적으로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계획이 간단하기 마련이다. 짧은기간 동안 최대한도로 골프를 즐기기 위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골프장에서 지내고 피곤한 몸으로 침실을 찾는 일이 반복되면서 서로 마주치는 일은 드물다.

그 날따라 정월 대보름달이 남국의 휴양지를 밝게 비춰주는 황홀한 초저녁이었다. 해변가로부터 들려오는 불러본 듯한 노래소리는 방에서 쉬고 있는 우리 부부를 방에만 머물러 있게 하질 않았다.

동요와 사랑의 노래를 합창으로 반복하는 그들은 아침에 만난 한인들이었고 우리 부부는 자신도 모르게 한 무리가 되었다.근접해 본 그들은 늦은 50대의 인생을 살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은채 다른 관광객을 모아 자신들의 독자성을 알리는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들 얘기를 듣는데 인색해질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성장해 출가한 자식들이 아직 저의 품에 안겨있을 때부터 사귄 사이들이죠. 함께 관광지를 찾아 오전에 골프를 즐긴 후 해변가에 모여 젊은이가 되어 갖는 시간입니다. ‘젊음’이란 것이 지나간 시절을 일컫는다기 보다는 옛 추억을 생각하는 지금의 마음 자세가 아니겠어요”“우리가 사는 오늘의 인간들이 싸움을 그치지 않는 원인 중 하나가 문화의 차이를 이해 못하는 데서 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요. 그래서 여행지에 와서는 이곳 사람들이 즐겨 쓰는 모자를 사서 쓰고 다니죠. 차양 목적도 있지만 이곳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 섬으로써 그 사람들과 똑같이 되어 행동함으로써 관광객이면서도 결코 이방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해요. 모자를 쓴 저를 보면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대해 주죠. 또 우리는 풍요한 휴가시간을 즐기지만 여기 사람들의 가난은 상상을 초월해요. 떠날 때는 입던 곳을 잘 싸서 스니커까지도 벗어주지요. 감사해 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답니다”

30년 가까이 유지된 우정을 신앙처럼 감싸 안고 남국 휴양지에서 시간을 잊은 채 삶을 다양하게 즐기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나의 불안은 기우였을 뿐, 시인처럼 달밤을 노래하는 그들은 정녕 행복에 꼭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다.


백만옥(전 고교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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