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조류독감

2004-02-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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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조류독감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서도 델라웨어와 뉴저지에 이어 펜실베이니아에서 조류독감이 발견돼 뉴욕 한인사회도 적지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식사 약속을 정하다 메뉴로 ‘닭’과 관련한 음식을 언급하면 으레 “조류독감이 유행하는데 겁도 없냐”며 기피하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닭이나 오리 등과 관련된 한인 업소들마다 매출이 줄고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졌다며 아우성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과학적으로 볼 때 닭고기나 오리고기를 먹고 조류독감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한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새나 닭의 세포에서 증식돼 전염될 수 있지만 정상적인 사람 세포에서는 불가능하다. 다만 동남아에서 사람에게 전염된 몇몇 경우는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발생한 특이한 경우다.


물론 이 경우에도 감염된 사람들은 닭고기를 ‘먹어서’가 아니라 닭과 ‘가까이 접촉해서’이다. 더구나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섭씨 20도에서 3, 4일밖에 살지 못하며 75도 이상의 열에서는 금새 죽는다고 한다. 때문에 조류독감이 무서워서 닭고기 요리를 먹지 못한다는 말은 근거도 없고 아예 이야깃거리가 되질 않는다.

한국서는 조류독감 파문으로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조류독감으로 인한 희생자는 정작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양계농가와 닭, 오리 가공업체, 유통점, 도산매업자 등이 지난 2개월간 약 8,0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는 집계다. 심지어 관련업체들은 한국산 닭, 오리고기를 먹고 조류독감에 감염됐을 경우 20억원을 지급하겠다는 보험 가입식을 열기도 했으며 각종 단체들
이 나서서 소비 촉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닭이나 오리와 관련된 뉴욕 한인 업체들도 조류독감이 발견됐다는 뉴스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피해를 입고 있다. 더구나 한국에서처럼 농림부나 관련기관이 나서서 적극적인 해명과 홍보활동을 펴는 것도 아니어서 관련 업주들로서는 ‘벙어리 냉가슴 앓는 격’이다.

한국 사람은 과학적인 사고보다는 유행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아무쪼록 뉴욕 한인 사회만큼은 조류독감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슬기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장래준(취재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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