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숯가루-나의 상비약

2004-02-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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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은 영어로 Charcoal이라고 하는데 바베큐 할 때 쓰는 조개탄 같은 땔감을 말하는 게 아니라 요즈음 안방극장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한다는 ‘대장금’의 장금이가 간장맛을 좋게했다는, 나무를 구워서 만든 바로 그 숯이다.

숯은 흡착하는 힘이 상당히 세다. 개스와 같은 기체나 물과 같은 액체 용매에 대해선 그 효과가 매우 크다. 그래서 염증이나 모기, 벌에 쏘였을 때 숯가루를 되직하게 물반죽해서 흐르지 않게 반창고로 붙여놓으면 하루만 지나면 거뜬한 것도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골프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기에 물려 가렵다고 고생할 때 가르쳐 주었더니 다음날로 그 가려움증이 싹 가시더란다.얼마 전엔 미국인 처조카사위가 배에 개스가 찬다길래 숯가루 과립을 주었더니 복용하고는 새낌해진 혀를 자기 아내에게 내밀어 보이며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더니 잠시 후 늘 복용하던 약 보다 훨씬 좋다며 ‘I will convert to charcoal” 한다.


나는 항생제를 되도록 거의 쓰지 않는다. 사랑니 발치를 많이 하지만 환자가 먼 기숙사로 간다든지 장기 출타를 해야하는 경우가 아니면 약 처방을 하지 않으니까 “전에 다른 의사는 처방전을 꼭 주던데...” 하며 의아해들 한다. 내 대답은 “혹 몸 상태에 따라서 염증이 생길 수도 있지만 내 딸의 사랑니를 빼도 나는 항생제를 먹도록 하지 않는다”이다.

항생제는 비타민과 같은 보약이 아니다. 툭하면 감기 걸렸다고 습관적으로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내성이 생기면 자꾸 단위를 높여가야 한다. 심장질환자 같은 예방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생제를 남용하지 않도록, 모든 약은 꼭 의사의 지시에 따라 써야 한다.

처방전 없이도(?) 쉽게 살 수 있는 곳이 있는 모양인데 항생제는 일단 시작하면 최소 일주일 정도는 먹어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고 2~3일 복용 후 나았다고 생각해 복용을 중단하면 항생제에 대한 내성만 키우게 되어 다음 치료 때는 잘 낫지 않게 된다.

나는 사랑니를 뺄 때 치아를 절단해서 빼내기 때문에 앞니를 뽑고 난 때와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입 속 깊이 위치하고 보니 음식물이 고여있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음식물이 썩게되면 턱뼈가 곪게되어 소위 Dry Socket이라는 냄새 고약한 악취를 수반하는 통증이 한 열흘 정도 계속되는데 이건 너무 너무 아프다.

이것은 통상 발치 후 2~3일 후부터 아파오는데 아프기 시작한다는 전화를 받으면 나는 환부를 깨끗하게 과산화수소로 음식찌꺼기를 Floating한 후 Charcoal을 물에 개어 찻숟갈 하나 정도 환부에 붙여주면 15분 내에 ‘목까지 시원해지네요’라는 답을 들을 수 있다.

혹 치과의사분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한번 시험해 볼 것을 권한다.
내가 내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쓰고 있는 좋은 치료법이라고 생각되어 자신있게 권한다.

숯은 영양분과 독소를 구분하는 선별력이 있어서 식사 후 바로 복용하면 애써 먹은 음식의 영양분까지 모두 잃게되니까 식간에나 취침 전에 사용하면 좋다. 검정색이 침실이나 옷을 더럽힐 소지가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숯은 미국 소아과의 Emergency의 상비약이라고 한다. 어린아기가 잘못 약을 먹었을 때 숯가루를 물에 타서 입에 흘려넣어 그 약효능을 흡착 씻어버린다. 걷지도 못하는 어린아기에게 사용해도 좋을 만큼 먹어도 안전하다.


박춘식(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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