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대통령의 날

2004-02-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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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미국의 국경일로 들어있는 「대통령의 날」은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과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라함 링컨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중 나름대로 큰 업적을 남겼지만 이 두 명의 대통령이야 말로 미국 역사에 빛나는 거인으로 우뚝 솟아 있다.

조지 워싱턴은 독립전쟁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끌어 독립을 성취했고 초대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초석을 닦아 놓았다. 에이브라함 링컨은 노예제도를 철폐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미연방의 분열을 방지하여 미합중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워싱턴대통령의 생일은 2월 22일이며 링컨대통령의 생일은 2월 12일이다. 전에는 두 대통령의 생일을 따로따로 달력에 표시했고 워싱턴 탄신일을 크게 기념하기도 했다. 그런데 2월의 세번째 월요일이 대통령의 날이 되면서 두 대통령을 함께 기념하게 되어 일반인들에게 모처럼 즐거운 연휴가 되고 있다.


워싱턴대통령과 링컨대통령은 시대적 배경이 다른 만큼이나 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사람이다. 워싱턴은 버지니아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매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링컨은 켄터키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 공부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된 덕목이 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이 그들의 정직성과 겸손한 마음인데, 이것이 인격의 바탕이 되어 그들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국가와 국민 뿐 아니라 역사 앞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한 것이다.

워싱턴이 어렸을 적에 그의 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벗나무를 잘라서 혼이 난 적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벗나무를 잘라낸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워싱턴은 자기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벌을 주려고 하자 그는 벌을 받을지언정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의 정직성에 감동하여 벌 대신 상을 주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링컨의 일화와 일맥상통한다. 링컨이 어렸을 때 상점의 점원으로 일을 했는데 물건을 산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잘못 내준 일이 있었다. 손님이 떠난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링컨은 하루종일 걸어서 먼 곳에 있던 손님의 집을 찾아내 거스름돈을 전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링컨이 남북전쟁 도중에 대통령 선거를 치루게 되었는데 당시 전쟁에 염증을 가진 평화주의자들은 남부와 외교적 타협을 주장하면서 링컨을 제거해야 하는 장애물로 생각했다. 이런 와중에서 그는 “만약 반란을 이유로 선거를 연기하거나 중지한다면 반란자는 이미 우리를 정복하고 파괴했다고 서슴없이 주장할 것이다”면서 선거를 하여 재선됐다.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상원에서는 호칭에 대해 「대통령 각하」 「자유의 수호자, 대통령 각하」 등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데 그는 하원에서 내놓은 「합중국 대통령」이 가장 좋다면서 더 이상의 거론을 만류했다. 그는 대통령을 한 번 하면서 은퇴를 결심했고 두 번 역임한 후에는 지지자들의 권고를 물리치고 고별사를 발표했다. 이래서 미국 대통령은 두 번 연임한 후 물러나는 전통이 생겼다.

워싱턴대통령과 링컨대통령은 정직하고 겸허한 인격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 사심없이 성실하게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였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대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이 두 대통령의 정신이야말로 바로 미국이 추구하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미국이 있는 한 이 두 대통령을 기리고 대통령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왜 그런 대통령이 없을까. 대통령이라는 사람들은 재임 중 제왕의 절대권력을 휘둘렀지만 후에 알고 보면 국민을 배신하고 실망시키는 일만 하지 않았던가. 개혁이라는 기치를 들고 나온 노무현대통령 마저 주변 사람들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대통령이 직간접으로 관련된 듯한 분위기에서 탄핵소추까지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을 한 개인들에게도 참으로 안된 일이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너무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미국의 「대통령의 날」에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이기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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