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백정 이야기

2004-02-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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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입은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지워지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우리는 하루도 말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말의 힘은 천하장사의 힘보다 더 대단하다. 우리가 한 세상 살아가면서 성공도 실패도 행복도 불행도 말 한마디로 비롯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옛날에 박 길동이라는 나이 지긋한 백정이 장터에 푸줏간을 냈다. 어느 날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다. 그 중 한 양반이 백정에게 반말로 주문을 했다. 얘, 길동아. 고기 한 근 다오. 예, 그렇게 하죠 박 길동은 솜씨 좋게 칼로 고기를 베어서 주었다.

함께 온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신분이긴 하지만 나이든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하기가 거북했다. 그래서 박 서방, 여기 고기 한 근 주시게.라고 말했다. 예, 고맙습니다.라고 기분 좋게 대답한 박 길동은 선뜻 고기를 잘라 주는데, 처음에 산 양반이 보니 자기가 받은 것보다 갑절은 되어 보였다. 그 양반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 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째서 이 사람 것은 크고 내 것은 작으냐? 그러자 박 길동이 손님 고기는 길동이가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서방이 잘랐으니까요라고 말했다.」이 이야기는 말 한마디에 살인도 면한다고 하지만, 세 치 혀끝을 잘못 놀려 패가망신하는 수도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잘 때까지 많은 말을 한다. 이런 말들은 가족이나 친구들 일 수도 있고, 혹은 좀더 어려운 다른 사람들일 수도 있다. 우리 속담에는 주고받는 말을 조심스럽게, 잘해야됨을 가르쳐 주는 것이 많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등이 그것이다.

또 속담을 한자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는 ‘투석석래(投石石來) 척병병회(擲餠餠回)’라는 말이 있다. 이는 돌을 던지면 돌이 돌아오고, 떡을 던지면 떡이 돌아온다는 말이다.

한인사회를 가만히 둘러보면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식당에서 종업원을 부를 때 손을 들거나 ‘여보세요’보다는 ‘어이, 아줌마, 종업원’ 등으로 호칭하는 이들이 있다. 친하다고 공공장소에서 비어나 속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한인사회의 장을 맡고 있는 인사들 가운데는 나이 지긋한 이사나 회원들에게 하대를 하기도 한다. 소위 한인사회의 인사임을 내 세우는 이들 중에 여전히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한 채 공식석상에서 기자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한인 업주들 가운데는 외국 종업원을 가족처럼 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되는대로 함부로 말을 하는 이들도 꽤 많이 있다. 예전보다는 덜 하다지만 아직도 말끝마다 욕을 달며 말하는 업주들도 있다. 그들은 종업원이지 매일 남에게 욕을 먹어야 할 욕 감태기는 아닌데도 말이다.

심지어 일부 한인가정에서는 배우자를 업신여기는 말을 일삼거나, 자녀들이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 등 웃어른에게 경어를 사용하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까지도 있다니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말을 할 때 입술과 혀끝에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는 독이 실려 있다면 매우 위험한 일이다. 폭력에 의한 상처는 치료를 받으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지만 말로 인한 상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요구받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말을 잘 해야한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는 사람을 살리고 죽일 만큼의 강도를 지닌다. 그런 만큼 말을 잘한다는 것은 기술이나 재주보다는 생명을 가지는 것이며 그 사람의 인격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좋은 말,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따뜻한 말, 우정과 사랑이 가득 담긴 말, 사람을 키워내고 살려내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말을 잘 하는 사람일 게다.다른 이들을 충분히 감동시킬 수 있고 희망을 전할 수 있는 말이 주는 행복은 헤아릴 수 없기 크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이 가족과 이웃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는지 혹은 행복과 기쁨을 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그리고 백정이야기에 담겨있는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는 교훈을 늘 실천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창흠 편집위원
chye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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