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열심히 살다보면

2004-02-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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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중 가장 중요한 것들 중 세 가지를 든다면 의식주(衣食住)일 수 있다. 의는 옷이요, 식은 밥이요, 주는 집이다. 벌거벗고 살 수 없어 입는 것이 옷이다. 먹지 않으면 죽으니 먹는 것이 밥이다. 잠자고 쉬어야 되니 자는 곳이 집이다. 세 가지 모두 죽을 때까지 큰 몫으로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의식주 중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밥이다. 옷은 허름하게 입어도 산다. 잠잘 곳은 대궐 같은 집이 아니라도, 머리 누이고 다리 뻗을 곳만 되어도 산다. 그러나, 밥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여기서 밥이라 함은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를 총칭한다. 먹거리란, 밥으로 총칭할 수도 있지만 1차원의 경제적 바탕 힘으로 지칭할 수 도 있다.

선사(先史)시대, 즉 역사기록 이전의 인류는 옷이란 것 없이도 살았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오지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도 가릴 곳만 살짝 가리고도 잘 살아간다. 언제부터 인류는 옷을 입었나. 이제는 사람만 옷을 입는 시대가 아니다. 일정 동물도 사람이 옷을 입혀 살아가게 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동물들은 옷을 걸치지 않고도 잘 살아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집은 천연 동굴일 게다. 비를 피하고, 눈을 피하고, 바람을 피하고, 무서운 짐승을 피해 살았던 동굴들이 사람의 가장 오래된 집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 동굴엔 난방이나 냉방도 없고 부엌이나 화장실도 없다. 동굴이란 문화적 공간이 아닌 삶, 즉 생존을 위한 공간으로 존재했다. 그 때는 힘센 자가 가장 좋은 동굴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 때의 힘센 자란 키가 크고,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자들이었을 게다.


물리적 힘만 세면 좋은 곳과 좋은 먹거리를 차지했던 그 시대엔 여성들은 종족번식의 수단으로만 여겨졌을 것이다. 보편적으로 힘센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거느린 시대도 있었을 것이다.

선사시대를 지나 부족이 생기고 나라가 생성되면서 힘 센 사람의 개념은 조금씩 변한다. 촌장이나 부족장이나 나라의 임금과, 임금을 둘러싸고 있는 권력자들이 힘센 사람이 된다. 이 때부터는 시장이 생기고 법이 만들어지며 정치가 시작된다.

지금은 어떤가. 경제적 힘, 곧 밥벌이를 잘하는 남자가 힘센 사람에 속한다. 밥벌이를 잘 하는 이런 사람들은 수 에이커 나가는 파란 잔디가 깔린 정원에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수영장, 테니스장과 온갖 보안장치를 다하며 살아간다.

힘센 자들이 사는 동네는 안전도 무시 못한다. 시간 시간마다 안전요원 차가 돌아다니며 이상한 차가 지나가면 곧바로 뒤따라 다니며 점검을 한다. 더 좋은 곳에 사는 힘 센 사람의 현대판 동굴은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려면 정문에서 점검을 받고 들어가지도 못한다. 자동차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궁궐 같은 집이 나온다. 일반인들은 감히 얼씬도 못하는 곳이다.
지금은 남자만 힘센 것이 아니다.

여자들도 힘이 세다. 여성상위시대를 굳이 들추지 않아도 경제적 부(富)를 창출하며, 그 부를 누리며 사는 여성들은 힘센 자들이다. 동굴에 안주해 낳아놓은 자식들에게 젖을 먹이며 종족번식을 위해 살았던 여성들. 그 여성들이 이제는 동굴 같은 집안을 벗어 나와 남자 못지 않은 밥벌이들을 하고 있다. 살결이 고운 이런 여자들은 밥벌이를 잘도 하며, 남자 열 부럽지 않은 힘센 여성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사람은 일단 의식주만 해결되면 힘이 있든 없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살아는 간다. 그러나 이 의식주도 밥벌이의 지위와 수입에 따라 달라진다. 곧 ‘힘센 자’의 논리에 따라 의와 식과 주는 모양을 달리하게 된다. 여기서 나타나는 의식주의 모양 차이는 곧 그 사람의 문화적 삶과 연결된다. 미국에 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다.

오래된 이민자 일수록 그 후손들이 의식주 문제 해결은 물론이요, 그들은 문화적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본다. 인종과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다. 하지만 1세들이 고생하며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놓았기에 그들은
힘센 자의 그룹에 속해 부에 부를 창출하고 문화적 삶을 만끽하며 살아간다.

가릴 곳 살짝 가리고, 나무로 듬성듬성 만들어 동굴보다 조금 낫게 집을 짓고, 날짐승과 들풀로 생을 연명하는 사람들. 지구촌에는 이런 사람들이 아직 많다. 현대문명과 문화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오지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생각하며 천국 같은 이곳에서 ‘열심히 살다보면’ 의식주에 문화생활까지도 누리며 힘센 사람으로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김명욱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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