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사마’(Osama)★★★★

2004-02-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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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위해 남장한 12세 소녀
끝내 늙은 율법사의 첩으로

아프간 여성들의 처절한 아픔 그린 수작

최근 붕괴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하에서 온갖 사회적 불평등과 불의를 겪는 아프간 여성들의 고통과 고뇌를 통렬하면서도 비극적으로 그린 압도적인 드라마다. 이 영화는 탈레반 정권을 피해 파키스탄으로 도주했던 시딕 바르파크 감독의 데뷔작(각본, 편집 겸)으로 탈레반 정권 하에서 공부가 하고 싶어 남장을 했던 소녀의 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탈레반 전권 붕괴 후 카불에서 찍은 최초의 극영화이기도 한데 이란 문화부에서 자금과 기술을 지원했다. 감독이 이란의 명장 마흐말바프와 키아로스타미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듯이 영화의 이미지와 서술방식 그리고 엄격하게 사실적이면서도 시적 분위기를 지닌 것이 이란 영화를 연상케 한다. 얼마 전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격정적이요 참담하도록 가슴 아픈 수작이다.
주인공은 12세난 소녀. 소녀와 그의 어머니가 일하던 병원이 갑자기 폐쇄되면서 두 사람은 생계가 막연해진다. 소녀의 아버지와 오빠는 전사해 집에 남자라곤 없는데 탈레반 정권이 여자 혼자 외출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소녀의 어머니는 딸의 머리를 자르고 남자 옷을 입혀 소년으로 변장시킨다.
그리고 이름을 오사마(마리나 골바하리)라고 지어준 뒤 남편 친구가 경영하는 구멍가게에 취직시킨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공포와 불안에 떠는 오사마의 모습이 측은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오사마는 사원에서 기도를 하면서 남자들의 기도방식에 익숙지 못해 의심을 사게 된다. 여기에 회교 율법사들이 군사훈련 학교 겸 회교교리 학교에 온 동네 소년들을 집합시켜 공부를 시키면서 오사마는 소년들 틈에서 남자 행세를 하려고 갖은 애를 쓰나 생리 때문에 신원이 탄로 난다.
그리고 오사마는 재판에 회부돼 유죄가 선고되고 벌로 늙은 회교 율법사의 아내가 된다. 이 율법사의 집에는 오사마 외에도 여러 명의 아내가 있는데 남자는 방마다 자물쇠를 잠가 놔 여인들은 감옥생활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율법사가 초야를 치르기 위해 뜨거운 물로 목욕할 때 앞으로 자기에게 닥칠 모진 운명이 두려워 고양이 앞의 쥐 표정을 하는 오사마의 모습이 가슴을 찢어 놓는다. 배우들은 모두 비배우들로 골바하리의 공포에 사로잡혀 제 정신이 아닌 듯한 표정이 심금을 울린다. PG-13. UA. 웨스트사이드 파빌리언(310-281-8223), 아크라이트(323-464-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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