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파원코너] 강리도의 교훈

2004-02-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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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이 난에서 명나라 시대에 정화 함대가 컬럼버스보다 70년 앞서 미주 대륙을 발견했다는 영국인 개빈 멘지스의 주장을 소개했더니, 독자 한분이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발행되는 로컬지 기사를 소개했다.

1월23일자 새크라멘토 비(Sacramento Bee) 지에 따르면 중국 함대가 샌프란시스코 만으로 들어와 새크라멘토강을 따라 올라가다 한 척이 좌초했는데, 멘지스가 글렌 카운티에서 그 장소를 찾아냈다. 중국 정크선 좌초지로 추정되는 곳은 세명의 땅주인이 소유하고 있는데, 두명은 멘지스의 발굴 취지에 동의했지만, 한사람이 TV로 방영될 경우 수익금 전액을 내놓으라고 고집해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멘지스는 좌초한 정크선에 탄 선원과 여자들이 다른 배로 옮겨타지 못하고, 짐을 내려 샌프란시스코 일대에 정착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에 형성된 최초의 중국 식민지인 셈이다. 그는 인근에 자라는 벼가 중국 품종으로 나중에 유럽인이 가져와 재배한 쌀과 다르고, 명대 도자기 조각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들을 증거로 제시했다.


DNA 조사 결과, 근처 인디언 중에서 중국 혈통이 발견되고, 난파선 잔해로 추정되는 목재를 대상으로 탄소연대측정을 시험하면 명대 초기의 시기로 나오고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 이외에도 뉴질랜드, 카리브해 등지에 중국 난파선 발굴작업을 하고 있는데, 돈이 부족해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의 발굴 노력이 결실을 맺을지는 미지수지만, 역사를 새로 쓰려는 노력만큼은 높이 살만하다.

멘지스의 연구 가운데 눈에 띠는 대목은 한국이 최초로 세계 지도를 만들었고, 정화함대가 이 지도를 들고 유럽인에 앞서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대서양으로 항해했다는 주장이다. 그 지도가 바로 일본 교토 류코쿠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彊理歷代國都之圖)’다. 줄여 ‘강리도’라고 한다.

멘지스는 정화함대가 1488년 포르투갈인 바르돌로뮤 디아즈가 희망봉을 발견하기 67년전에 역방향으로 아프리카 남단을 돌 때 어쩌면 당시에 세계지도를 들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수소문 끝에 일본까지 가서 한국인이 만든 강리도를 보고 감탄했다고 술회했다. 해군 제독 출신으로 고지도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는 한반도가 일본보다 크게 그려져 다소 주관성이 개입됐지만, 아프리카에 관한한 당시 항해술로는 정확히 측정했다고 분석했다.

강리도는 조선 태종2년인 1402년에 김사형, 이무, 이회등이 작성한 지도다. 권근의 양촌집에 따르면 중국에서 만들어진 성교광피도와 역대제왕 혼일강리도를 합쳐 만든 것이다. 당시 한국인들이 아프리카 해역을 순항하고 그린 것은 아니지만, 외국의 여러지도를 가져와 종합하면서 당시 지도기법으로는 세계를 정확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제주이트 교단 소속 신부 마테오 리치가 곤여만국전도를 중국에 전하기 200년전에 한국에서 세계지도가 만들어진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강리도에는 인도 반도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지만, 사하라 사막과 유럽이 표기돼 있다. 이 지도는 1403년 조선 사절단이 명 황제(영락제)에게 선물했고, 정
화가 항해에 떠날 때 이를 소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600년전에 세계 최대강국이었던 명나라가 전세계 해상을 탐험하고 제해권을 장악할 당시에 한국은 소프트웨어와 우수한 기능인력을 중국에 제공했다는 점이다.

한국이 세계를 탐험하지 않았지만, 각국의 지적 산물을 종합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재주를 오래전부터 발휘했다. 멘지스의 분석을 잠시 빌리면 당시 정화함대에는 조선조의 우수한 해운 기술자들이 동승했는데, 기술력에서 조선은 당시 아시아에서 최고의 단계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일본 식민통치와 분단의 100년을 거치면서 한국인들이 안에서 싸우는데 익숙해져 있다. 600년 전에 우리 선조들이 세계 지도를 그렸다는 사실은 더 이상 우물 안에 갇혀 집안 싸움 하는데 매몰되지 말고 세계를 나와 달리라는 교훈을 후손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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