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결혼과 가정

2004-02-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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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그동안 격조하였던 지인들에게 연락도 하고 덕담을 나누는 것이 우리들의 오랜 풍습이다.

지난 연초 시애틀에 있는 친구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친구가 40대에 간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로 세 아이들이 로스쿨, 대학원 등을 마치고 각자 전문직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고 이제 본인은 유치원을 하고 싶다고 필요한 공부를 하는 당찬 여인이다.그녀는 이제 걱정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걱정이 생겼다고 했다.

30을 바라보는 큰딸이 결혼할 생각은 안 하고 일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이다. 하도 답답해서 전미국을 상대로 서로 비슷한 사람들을 소개해 준다는 중매인에게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몇 사람을 소개 받았지만 전혀 진전이 없을 뿐 아니라 딸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참 답답한 마음을 토로한 후 전화를 끊었다.나도 30을 바라보는 나이에 교수가 되겠다고 학위를 받기 위해 책 속에 묻혀 사는 딸을 가지고 있기에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면 의외로 공부를 마치고 전문직에 종사하면서도 미혼인 여성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생각으로 이들은 결혼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것일까? 무엇이 이들에게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일 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통하여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일까?

23,4세만 되면 거의 결혼을 하고 26,7세만 넘으면 올드 미스라고 해서 크게 부끄러워 해야 했던 시대에 자라나 인식이 굳어진 우리가 크게 변한 새 문화와 젊은이들의 사고를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견인주의자이고 시인이던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 등을 읽으며 스스로 세상 사는 지혜를 터득하고 결기를 다지며 젊은 시절을 보냈던 우리와, 그냥 있어도 모든 것이 주어지는 시대에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서 새로운 문화 속에 사는 젊은이들이 같은 사고를 공유해야 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혼율이 47.7%라는 숫자가 충격이라기 보다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한국 통계청의 발표를 보고, 또 TV에 나와 좀 더 자신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삶을 즐기기 위해 아이들을 갖지 않기로 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젊은 부부들을 보면서 아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하 수준으로 떨어졌고 결혼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새로운 문화와 젊은이들의 사고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이들의 생각이 이렇게까지 변하게 된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하여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 마저 들게 한다.

우리가 주변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여러가지 경이적인 것들에 경탄하고 또는 약간은 두려움으로 멀리서 보고 있는 사이, 이 새로운 문화는 젊은이들의 사고와 인식에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에 저항하도록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시대에 따라 또는 지역에 따라 문화가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하더라도 인류에게는 변할 수 없는, 또 변해서는 안되는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

젊은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어 잘 지키고, 자녀를 낳아 바르게 키우는 일이다. 우리는 가정을 통해 인류에게 꼭 필요한 보편적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이제 이것이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고 보람있는 일임을 젊은이들이 인식할 수 있게,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노력해야 될 것 같다.

최성규(베이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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