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양만춘 장군에게 보내는 연서

2004-02-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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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한국 고대사를 둘러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때도 없는 것같다.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로 고구려사를 자기들 변방의 한 부족국가로 편입시키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잠자고 있던 광대한 중국 대륙이 기지개를 켜면서 1,500년이나 고정되어있던 역사부터 바꾸려들고 있다.고구려는 강인한 기상과 활달한 민족성을 지닌 강건한 나라로 압록강 유역 일대에서 가장 먼저 크게 성장, 중국은 고구려가 언제 쳐들어올 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그 유명한 만리장성을 쌓아 방어하지 않았던가.

북만주와 요동을 근거지로 하여 끝없이 국토를 넓혀나갔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등이 우리의 선조임에도 나날이 힘이 강해져가고 있는 중국은 갑자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그들이 자기네 선조라고 한다.


이런 중국을 보며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건국 800년만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망하고 만 고구려의 운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7세기경 삼국 통일을 신라가 하지 않고 고구려가 했더라면 광개토대왕이 개척한 그 광활한 만주 벌판이 우리 것으로 남아있을 것이고 오늘날 이 분쟁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을 하는 애석함도 느낄 것이다.

이 시점에서 고구려 대 수 및 당과의 70여년에 걸친 전쟁(598-668년) 중 한 인물을 떠올려보자.고구려에는 을지문덕 같은 명장도 있지만 무명의 일개 성주지만 뛰어난 기개와 용기로 천하의 당태종을 울고 가게 한 안시성주(安市城主) 양만춘(楊萬春)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당태종은 전날 수양제가 고구려 정벌에 실패한 것을 보복하고 영토를 넓히고자 보장왕 4년 여름 고구려로 쳐들어왔다. 건안성, 개모성, 비사성, 신성, 난공불락의 요동성마저 한달 남짓한 항전 끝에 함락하고 말자 고구려 정부는 안시성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고혜진, 고연수를 원군으로 보내어 구원케 하였으나 두 장수는 당나라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고립무원의 형세가 된 안시성은 성주 양만춘을 비롯하여 성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죽음으로 항전, 당태종은 3개월동안 매일 6, 7차례의 공격을 퍼부었으나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그들은 마지막으로 안시성 옆에 산을 쌓아 성의 상태를 살피려 했고 안시성에서는 밤에 몰래 성문을 열고 나가 무너뜨리기 일쑤, 그래도 적병은 포기하지 않고 50만의 병력을 60일 동안 동원시켜서 성 옆에 높다란 산을 쌓고 그 꼭대기에 올라가 성을 내려다보는 치명적인 작전을 폈다.

안시성은 이 역시 한밤중에 성문을 열고나가 적이 쌓아놓은 산을 전부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이와같은 안시성의 집요한 항전과 작전에 말려들어 지구전에 들어갔지만 당군은 보급로가 끊긴데다가 고구려군이 당군의 배후로 돌아 공격하니 불세출의 당태종도 두 손을 들고 철군해야 했다. 용감무쌍한 안시성주에게 찬사를 남기고.

이 대목에서 우리들은 ‘양만춘 장군에게 보내는 연서(戀書)’를 쓰지 않을 수 없다.그렇다면 당당한 고구려의 자손인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할까.
고구려사 및 고구려의 유업을 받들어 세운 발해사 등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관심이 따라야 할 것이다.

오는 6월 중국 소주(蘇州)에서 열리는 세계문화유산위원회 총회에서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유적뿐 아니라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도 등재 되게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중국의 입김이 세다 하여 고구려사가 중국 것이 되어버리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겠지만 과거를 잃어버린 민족은 결국 세계사에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만의 것이라는 말도 잊지 말자. 정녕 우리 역사가 힘에서 소외되고 패배한 자의 작은 이야기가 담긴 야사로 남기를 원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모쪼록 한국의 정치판은 이제 그만 싸울 것이며 뉴욕의 한인들은 전 세계인들을 향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가야 할 것이다.


민병임(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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