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받은 선물

2004-02-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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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포가 하나 집으로 배달되었다. 내가 받아 본 소포 중에 이렇게 큰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혹 잘못 왔나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분명 나에게 온 것이다.

그리고 보낸 사람의 짧은 메시지를 읽으면서 웃음과 감사가 나왔다. 년말 연시도 아니고 뭐 특별한 날도 아닌데 선물이라고 이름 붙여 받고 보니 익숙지 못한 일에 당황이 올 수밖에 없었다. 혹 뇌물은 아닌지 하는 반문을 해 보는 나에게 어찌나 쑥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성경에 뇌물과 선물에 관한 글이 있는데 ‘뇌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 같은즉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케 하느니라’(잠17:8)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잠18:16)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실 선물과 뇌물의 구분은 많은 경우에 모호하다. 둘 사이의 선이 유동적일뿐더러, 뇌물은 곧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로 포
장되어 전달되기 때문이다. 히브리말에서 ‘뇌물’의 의미를 지닌 낱말이 네 개 있는데, 넷 다 때로는 선물을, 때로는 뇌물을 뜻한다.


선물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념은 ‘선물은 아주 간단하게 그러나 정성이 드러나게 하라’는 것이다. 보통 서양인들은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정도이고 친구에게 보내는 선물은 아주 값이 싸지만 그러나 정성이 담긴 것으로 선택한다.

선물이 뇌물이 되는 수도 가끔 있다. “아랫사람에게 주는 것은 선물이고 윗사람에게 주는 것은 뇌물이다. 아랫사람에게 선물을 줄 때는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지만, 윗사람에게 줄 때는 비록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은근히 대가를 바란다”는 사전적인 정의가 있지만, 정을 나누고 덕담을 주
고받으며, 본인에게 주어진 기쁨을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풍습이 더러운 이해관계, 유착관계, 비리와의 연계 등으로 인해 망가져 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는 감사의 글을 적은 엽서나, 감사의 편지 등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불우한 ! 이웃, 병고에 시달리는 어려운 분들에게 따뜻한 사회의 정을 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선물이다. 당신이 삶을 통해 하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다.라는 덴마크의 한 잠언이 오늘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 나에게 가장 큰 선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값지고 품격 있는 선물은 바로 나 자신이다.

돈, 명예, 지위 등의 부귀영화도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내 지위, 외모, 재산 등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고, 다를 경우 가차 없이 나를 거절하고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아주 훌륭하게 지으신 ‘아름답고 존귀하고 가치 있고 순수한 걸작품’이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부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내가 하는 일이나 그 성과를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여 낙심, 열등감, 패배감, 위축, 고독, 공포, 후회, 지나친 경쟁이나 방어,! 과대 포장, 자만심, 우월감, 교만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사하신 내 모습 그대로를 마음껏 즐기며 살아야 한다.

아직도 눈 쌓인 들녘 사이로 여전히 볼품없는 마른 풀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뭔가를 쪼아 먹고 있는 새들을 보면서 적어도 그들에게선 삶의 서러움이나 두려움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선물에 감사하고 있음을 본다, 비록 내일 종말이 온다 할 지언정 그들에겐 하나님의 평화와 안심이 만물의 선물 속에 베어져 있음을 본다.


정 춘석목사(뉴욕그리스도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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