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식행사와 기도, 그리고 빈말

2004-01-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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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회 밤 행사를 알리기 이해 각 단체와 교회 사찰 등에 서로 분담하여 전화를 했다. 그 중 아는 목사님의 이름이 있어 반가웠다. 용건을 끝내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로 마무리를 했다.

‘나는 그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안 합니다’ 뜻밖의 답변. 신선한 바람이 일듯 마음이 환하다. ‘왜요?’ ‘아, 그 복 많이 받아라 해서 받을 복이면 복 없는 사람 있겠어요? 복 준다고 잘 되게 해 주겠다고 사기치는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식으로 종교를 오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중간 톤의 느긋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종교지도자가 갖춰야 할 바른 양식을 얘기하신 목사님.

솔직한 그 분의 말씀이 보석 같다. 얼마나 많은 말들이 그냥 말로써 뱉어지고 소리로서 범람하는가!아무 의미도 뜻도 없이 지껄이는 말은 말이 아니리라. 으레 그러려니 하는 인사, 빈 말로 하는 새해 인사를 일깨워 주었다. 부끄러워진다. 진심으로 목사님의 말씀에 동의한다. 갑자기 가까워진 기분이다.


진실만을 얘기하고 알리는 가난한 교회나 사찰, 그것을 알아주고 이해하는 사람끼리의 모임은 맑은 수정처럼 서로를 비춰 작은 허물도 자연스럽게 털어내어 늘 평안한 마음이리라.

그런 마음 가운데 피어나는 인간 본연의 염원, 모두가 평화롭고 사랑하며 더 밝은 세상, 낙원을 꿈꾸는 이들의 소망이 기도 아닐까? 말로써 뱉은 얘기가 아닌 마음에 이는 서원이나 바램도 역시 기도다.

미움, 질투, 또는 저주도 마음의 일이니 그러한 것이 마음에 있는 한 누군가의 안위를 위하고 복됨을 바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마음 비우는 일이 기도 보다 더 앞서야 하는지 모른다. ‘당신의 기도가 이뤄질지 모르니 조심하세요’라는 얘기가 떠오른다.

언제부터인가 기도가 공식석상의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신앙을 가진 이들이 모임의 멤버가 되면 그 회가 종교와 무관해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도를 한다. 기도의 내용은 항상 비슷비슷하다. 그러려니 하고 무관심하게 넘어가야 될 일일까? 기도가 입발림하는 인사쯤으로 전락되어선 안된다. 자신의 신앙과 공적인 일은 구별되어야 건강한 사회 밝은
모임이 될 것이다.

기도의 경건함이 손상되지 않기 위해선 절제가 필요하다. 두렵고 허약하여 뭔가 의지하려는 마음을 절실하게 내는 것오 일종의 기도다. 인류의 복된 날을 위한 믐과 약함을 구제 받으려는 행위가 같은 기도라는 점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복 받아라 해서 받을 복이면 복 없는 사람 없지 않겠느냐’신 목사님의 말씀은 소리로서의 말을 거부하신 것이다. 우리의
살아있는 의식, 깨어있는 사고를 위해 정면으로 반기를 든 얘기다.

진정한 의미의 기도는 인간의 욕망을 비우고 끝없는 번뇌를 쉬게 하여 안식과 평안이 함께 하는 가운데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하는 묵상이 아닐까?

사랑 얘기하는 곳에 사랑이 없고 화합을 얘기하는 곳에 화합 없다’는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공기관에서 특정 종교의 기도는 금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는 법으로 보호받을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빈말하지 않게 하소서...


김자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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