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Hwa Pyung(화병)의 특효약은 기도

2004-01-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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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예수가 초라한 구사에서 태어난지 며칠 후에 점성술을 연구하는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가서 아기를 보고 엎드려 경배하고 몹시 기뻐하며 황금과 유약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그 때 별의 인도가 잘못되어 아기예수를 못 찾았다고 한다면 얼마나 실망했고 화가 났을까?

여러분들은 만나야 할 사람을 못 보았거나 어떤 일에 실패를 한 적이 있는가? 희수를 넘기는 내게는 그러저러한 일로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 여러번 있었다.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 보다 언짢은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화가 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가 신통한 샤머니즘에 의지한 것 같다.


화병(火病)은 한국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으로 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가슴에 불을 댕기는 듯한 신체화 증세가 같이 나타난다. 1996년에 미국 정신과협회에서 Hwa Pyung(화병)이라는 영문 표기로 한글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 세계 표준명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작년 10월 하순에 북한에 두고 온 내 동생을 찾았으니 빨리 오라는 것으로 여러가지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북경을 거쳐 11월 1일(토) 평양의 순안비행장에 내렸더니 해외동포 국장을비롯하여 관계자들이 환영해 주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설레이는 기쁨도 잠시, 이산가족 담당자가 와서 하는 말이 동생을 못 찾았다고 하여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고 눈앞이 캄캄했다. 그럴 것이 작년에도 찾았다고 해서 왔다가 못 보았는데 또다시 꼭 같은 일이 생겼으니 말이다.

뉴욕주재 북조선 UN대사관을 통해 전달된 일이라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지고 내가 여기에 관광 온 것도 아니므로 당장 미국으로 도로 가겠으니 그리 알고 모든 수속을 하라고 소리 소리치고 내 방으로 가서 문을 잠구고 엉엉 울다가 무아경에 빠졌다.

얼마 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지만 개의치 않고 있는데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안내원이었다. 로비에 영접부의 고위 인사가 왔다며 가서 만나보라고 해서 내려갔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일이 잘못 되었으니 일주일 동안에 조직망을 통해 성실히 동생을 찾을 것이니 마음놓고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화가 좀 가라앉았다. 그리하여 8일(토)에 돌아올 때까지 찾지는 못했지만 제 고향 강서지구를 샅샅이 찾아 보았는데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기회에 다시 찾아보자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정치라는 것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나, 그 이데올로기는 세상에서 이미 판결이 난 지 오래다. 다만 우리는 원한의 휴전선을 없애고 애타는 이산가족들을 마음대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보고싶은 가족을 그리워하다가 화병에 걸려 자살하거나 술로 시름을 달래다가 죽어가는 사람들이 어디 하나 둘인가?


남북의 위정자들이여, 금강산이나 명승고적 관광이 뭐 그리 중요한가? 죽기 전에 통일에 앞서 이산가족은 꼭 만나게 해야 한다. 세계에 우리나라와 같은 나라가 어디에 또 있는가. 시급한 일이다.

별의 인도를 받은 동방박사들은 아기예수께 선물을 드렸지만 동생에게 주려고 가져갔던 금지환과 가죽잠바, 시계를 두번씩이나 도로 가지고 왔다. 동생을 만나는 그 날까지 소중하게 보관하고 기다릴 것이다.

강경신(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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