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상부상조의 미덕을

2004-01-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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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민사회 상부상조 조직으로 ‘무진’(無盡)이라는 것이 있다. 능력은 있지만 자금이 없는 사람이 있을 경우, “이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지 독립시키기로 하자”하고, 동창회나 향우회의 무진이 합의하면, 하고 싶은 장사를 물은 뒤 돕는다는 것이다.

한인사회의 ‘계’와 비슷한 이 무진은 전혀 이자가 없는 데다 서류나 인감증명이 필요 없는 것이 특이하다. 지원 받은 사람이 자리를 잡으면 그 돈을 돌려 받고 또 다른 사람에게 대부해 주어 조직을 강화한다.이같은 상부상조 조직인 무진이 생겨난 것은 이민 초기의 중국인들에게는 은행이 융자를 해주지 않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대부해 준다 하더라도 이자가 비싸고 담보를 제공해야 하며 또 대부해 주는 금액도 적을 수밖에 없었기에 동포들이 자활 수단으로 무진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끈끈한 동포애의 특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반면에 상부상조 정신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왔다는 한인들은 어떤가? 일부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 정말로 우리 한인들이 그동안 상부상조 정신을 미덕으로 살아왔는지 의심스러워진다.

한인업계의 고질병인 동종업종간의 과당경쟁은 차치 하고라도 요즘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인 사업자들간의 가게 자리다툼을 한번 살펴보자.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어느 가게가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이 퍼지면 건물주에게 찾아가 리스 계약이 얼마 남았는가를 확인하고 렌트를 올려 줄테니 자신에게 임대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성사 단계에 있는 계약에 끼어 들어 웃돈을 주면서까지 빼앗다시피 하는 경우를 보고 있으면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물론 제한돼 있는 한인상권에서 업소 장소 선정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남이야 어떻든 나부터 살고 보자’라는 식의 같은 입주경쟁이 한인 커뮤니티의 화합을 저해하고 오히려 반목을 기르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김노열 <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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