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날’(Dog Days)★★★★

2004-01-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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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교외의 똑 같은 모양의 주택가에 사는 부르좌들의 존재의 진부함을 잔인하게 조소하고 우롱한 오스트리아 영화다. 풍족하고 소독된 중류층의 공허한 소인의식을 혐오하면서 우리가 안전한 거처라고 생각하는 교외에 대한 인식을 난도질하고 있다.
인간혐오자의 영화가 아닐까할 정도로 감독은 인간 존재의 근본에 침을 뱉고 있다. 배우와 비배우들을 고용해 극영화와 기록영화의 한계를 무너뜨리며 어느 질식할 듯이 뜨거운 복날 하루에 일어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들의 여섯 개의 이야기를 엮었다. 기록영화식 촬영법을 썼는데 극본은 있으나 대사는 없다. 대단히 파격적이요 파괴적이며 강렬한 작품으로 재미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기가 자신의 삶과 운명을 다루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 사실 이들은 무모하고 목표를 상실했으며 도덕적으로 부식된 환경의 제물들.
은퇴한 남편은 생활의 모든 것을 저울로 달듯 규제하며 사는 사람. 그는 결혼 50주년 기념축하 행사를 준비하는데 함께 이 날을 기뻐할 사람은 자기 아내가 아니다.
과거 미의 여왕이었던 여인은 자기 애인에 미친 듯이 자신을 헌신하고 디스코에서 섹스와 노래와 술을 즐기던 사람들이 질투와 분노를 못이기면서 폭력이 발생한다.
오래 전에 이혼한 한 쌍은 이혼 후에도 좁은 집에서 함께 살면서 서로가 상대방이 나가주기만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의 삶을 지옥처럼 만들어놓는다. 한편 한 학교 여선생은 애인과의 외출을 위해 치장을 하나 막상 애인은 친구를 동반하고 나타난다.
날씨 때문일까 살균된 주위환경 탓일까 이들 이웃들은 낮에는 우수에 젖어 일광욕을 즐기다가 밤이 오면 술과 섹스에 취하면서 폭력과 야성적 감정을 마구 쏟아놓는다.
숨통을 조아대는 듯한 더위가 물러갈 줄을 모르면서 인간들의 긴장감이 팽창하고 성질들이 폭발하면서 고독과 좌절과 환멸의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됨의 공포와 아름다움 그리고 삶의 취약성과 내밀함을 화려하면서도 사납게 그린 경악할 영화다.
영화는 또 사랑의 상실과 사랑에 대한 열망 그리고 사랑 찾기의 불가능성을 말하고 있는데 소시민들의 소인의식을 불방망이로 내리치는 듯한 충격적인 작품이다. 울리히 자이들 감독. 성인용. 15일까지 뉴아트(310-281-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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