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금에 손대지 마라’(Touchez pas au Grisbi)★★★★½(5개만점)

2003-09-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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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렇게 멋진 갱스터가 또 어디 있을까. 회사의 중역처럼 흰 셔츠와 넥타이에 정장을 하고 단정히 머리를 빗어 올린 신사 갱스터 장 가방. 큰 코에 얇은 입술을 한 가방은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데 미녀와 친구, 좋은 음식과 포도주 그리고 쾌적한 생활을 즐기는 이 갱스터야말로 문화적 범죄자라고 하겠다.
늙어 가는 갱스터들의 우정과 명예와 배신을 고상하고 우아한 스타일로 그린 1954년작 흑백 프랑스 갱스터 영화다. 마지막에 멋진 액션이 벌어지기까지 인물들의 성격 묘사와 분위기 조성에 주력했는데 가방이 ‘나의 음악’이라며 애청하는 하모니카로 연주되는 운명적 기분의 주제 음악이 일품이다.
갱스터 영화답지 않게 정장차림의 두 나이 먹어 가는 친구 갱스터 맥스(장 가방)와 리통(르네 다리)이 각기 클럽댄서인 애인 롤라와 조시(26세의 잔느 모로의 모습이 고혹적이다)와 함께 파리의 단골식당에 앉아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맥스와 리통이 오를리에서 5,000만프랑 상당의 금괴를 훔쳤다는 사실을 신문보도로 알게 된다.
그런데 젊은 조시를 잃지 않으려는 리통이 강도 사실을 조시에게 얘기하면서 배신과 총격전이 벌어진다. 조시는 마약밀매 두목인 앙젤로(리노 벤투라)의 정부로 금괴 얘기를 앙젤로에게 고자질한다.
그리고 앙젤로가 리통을 납치한 뒤 맥스에게 금괴와 리통을 교환할 것을 제의한다. 밤의 파리 교외의 한적한 길에서 금괴와 리통의 교환을 놓고 기관총과 수류탄이 동원된 살육이 벌어진다. 그리고 금괴는-.
화면을 꽉 메우는 장 가방의 늠름한 존재가 압도적이다. 권총 찬 과묵한 신사강도로 줄담배를 태우는 맥스의 침착하고 편안한 태도가 갱스터 영화에 품위를 부여한다. 그는 신사이지만 때로는 여자의 뺨도 사정없이 후려치고 또 우정과 명예를 위해서는 과감히 살인까지 하는 액션의 사나이기도 하다.
맥스를 보고 느끼는 인상은 멋있는 아저씨. 갱스터는 반드시 이를 득득 갈고 소리를 지르는 신경 과민한 사이코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감탄할 만한 장면이 있다.
클럽을 전전하다 지친 맥스가 리통을 데리고 자기 아파트로 간다. 맥스는 깨끗이 정돈된 아파트의 주방 내 냉장고에서 포도주와 비스킷과 으깬 간을 꺼내 온다. 간을 비스켓에 발라 포도주와 함께 바삭바삭 씹어 먹은 뒤 맥스는 새로 세탁해 다리미질한 잠옷을 입고 리통에게도 한벌 준다.
그리고 세면실로 가 거울을 보면서 이를 닦은 뒤 잠자리에 든다. 새로 불붙인 담배를 몇 모금 태운 뒤 전등을 끈다. 이와 함께 맥스와 미국인 연인 베티와의 침실장면도 은근하다. 새 프린트와 자막으로 상영된다. 자크 베케 감독. Rialto. 11일까지 뉴아트 (310-478-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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