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여자에게 말해’(Talk to Her) ★★★★½

2002-12-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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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두쌍의 남녀 삶과 사랑의 찬가


무언이 다변보다 더 강렬히 감정을 표현하는 두 쌍의 남녀에 관한 사랑과 삶의 찬미로 참으로 이상하고 정의 내리기 힘든 작품이다. 눈물과 웃음의 감정들이 가슴을 흥건히 적시고 드는 아름답고 심오하며 시적인 영화이다.

말 못하는 여인들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간절한 감정이 여러 겹으로 벗겨져 노출되면서 고독과 집념, 질병과 죽음 그리고 정열과 운명의 내밀한 사연들을 은근하고 심오하게 펼쳐 보여준다.


위트와 눈물을 자유롭게 뿌리면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있는데 궁극적 사랑의 이야기를 혼수와 잉태, 그리고 부활과 죽음을 연결해 기묘하게 리사이클링 해낸다.

초현실적인 상상력으로써 과격하고 괴이한 인물과 행동을 알록달록한 배경을 바탕으로 짓궂은 장난하듯 묘사하는 스페인의 특이한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52)가 쓰고 감독했다. 그의 여느 영화와 달리 이번에는 상당히 차분하고 진지하고 명상적인데 내용과 정서가 진실하고 순수해 거의 선험적 경험을 느끼게 된다. 그는 1999년 여성들의 이야기인 ‘내 엄마에 관한 모든 것’으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젊은 특수 병원 간호사 베니그노(하비에르 카마라)와 중년의 기자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가 처음 만나는 것은 한 연극 극장에서 나란히 앉으면서다. 숫총각인 베니그노와 마르코는 둘 다 고독하고 영혼을 다친 자들.
둘이 다시 만나는 곳은 베니그노가 일하는 병원. 베니그노는 자기가 먼발치서 연모하던 젊고 아름다운 식물인간 발레리나 알리시아(레오노어 와틀링)를 정성껏 돌보며 말 없는 여인에게 독백으로 연극과 영화와 음악에 관해 들려준다.

그의 지극한 사랑이 때로 자극적이요 변태적으로 느껴지다가도 그 순수성에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마르코는 투우사 연인 리디아(로사리오 플로레스)가 소뿔에 찔려 식물인간이 돼 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베니그노를 만나게 되고 둘은 두 말없는 연인을 매체로 두터운 우정을 맺게 된다.

식물인간들의 과거가 회상식으로 전개되면서 두 남자와 두 여자의 관계가 설명되는데 베니그노는 자신의 알리시아에 대한 사랑을 몸으로 행위한다. 그리고 두 생명(아니 세생명)의 죽음을 통해 남은 두 사람에게 사랑과 용서와 희망의 가능성을 남겨 놓는다.

알모도바르 특유의 얄궂고 우스운 영화 속의 에로틱한 무성영화(기발나다)는 내용의 중요한 상징적 구실을 한다.
고독하고 정신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의 제짝 찾기 영화로 죽음과 질병과 자살이 있지만 결코 절망적이 아니다.희망과 사랑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라스트 신에서 맨 처음 연극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마르코처럼 눈물이 난다.

R. Sony Pictures Classics. 로열(310-477-5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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