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토끼막이 울타리’(Rabbit-Proof Fence) ★★★★

2002-11-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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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원주민 소녀들의 자유와 생존을 위한 용감한 투쟁을 감동적이요 강렬하게 그린 작품으로 실화다. 호주 정부는 1905~1971년 백인 피가 섞인 원주민 아이들을 강제로 부모와 분리시킨 뒤 집단수용소에 가두고 하녀와 농장 노동자로 양성했다. 히틀러의 유대인 멸살 시도와 비슷한 이런 정책으로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을 ‘도둑맞은 세대’라 부르는데 이 영화는 이 세대 중 한 명인 몰리(현재 생존)의 딸 도리스가 쓴 책을 바탕으로 했다.

1931년. 호주 서부 황량한 원주민 거주지인 지갈롱에서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던 13세난 몰리(이블린 삼피)와 그의 8세난 동생 데이지(티아나 산스베리) 그리고 이들의 10세난 사촌 그레이시(로라 모나한)가 경찰에 붙잡혀 1,200마일 남쪽에 있는 원주민 재교육소로 끌려간다. 이들의 아버지들은 호주 대륙 남북을 잇는 토끼막이 울타리를 건설한 백인 노동자들로 그들은 울타리를 세운 뒤 떠나버렸다.


그러나 용감하고 똑똑한 몰리는 수용소에 수감된 지 얼마 안돼 데이지와 그레이시를 데리고 집을 향해 탈출의 대장정에 오른다. 지혜로운 몰리는 토끼막이 울타리를 따라 북으로 필사의 도주를 하는데 이들 뒤를 쫓는 것은 원주민 추적자 무두(데이빗 걸피릴).

세 소녀를 체포하려고 기를 쓰는 사람은 호주 서부 원주민 보호정책 총책인 네빌(케네스 브라나가 냉기 도는 연기를 한다). 수용소의 원주민 아이들이 ‘데빌’(악마)이라 부르는 네빌은 백인의 피가 섞인 원주민 아이들을 백인과 결혼시켜 원주민의 피를 세대를 거쳐 말려 색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자다.

몰리는 불굴의 용기와 현명함 그리고 자연적 생존력을 동원, 추적자들 을 따돌리면서 두 아이와 함께 가차없는 불모의 대륙을 종단한다. 추적하는 무두마저 몰리의 용기와 지혜에 감동할 정도다. PS: 몰리와 데이지(현재 생존)는 마침내 엄마 품에 안기나 몰리는 성장해 두 딸을 낳았을 때 다시 셋이 모두 체포됐었다. 몰리는 둘째 딸 아나벨만 안고 탈출하나 이 딸이 세살 때 또 다시 아이를 빼앗긴다. 몰리가 첫째 딸 도리스를 다시 만난 것은 이로부터 25년 뒤였다. 그러나 아나벨은 다시 못 만났다.

지금 상영 중인 ‘조용한 미국인’을 연출한 필립 노이스의 진지하고 아름다운 솜씨가 유려한데 크리스토퍼 도일(‘조용한 미국인’ 촬영)의 거친 자연을 밀도 짙게 찍은 촬영이 무드 있게 화면을 압도한다. 이 영화로 데뷔한 세 원주민 소녀의 연기야말로 용감한 것이다. PG. Miramax. 선셋5(323-848-3500), 모니카(310-394-9741), 파빌리언(310-47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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