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른 날 죽다’ (Die Another Day) ★★½(5개 만점)

2002-11-22 (금)
크게 작게


남·북한 소재-한인배우 출연 ‘007시리즈’

‘배드 본드’ ‘배드 무비’다. 스무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데 007 시리즈 중 최악의 영화다. 요즘 할리웃의 고질인 이야기와 인물들의 성격 개발 대신 특수효과와 물량작전을 동원한 대형 꼴불견으로 이럴 바엔 차라리 본드를 더 이상 안보는 게 낫겠다.


지금까지 나온 본드 영화들의 조각들을 볼썽사납게 짜깁기한 듯해 독창성이라곤 전연 찾아 볼 수가 없다(각본이 누추하다). 본드역의 피어스 브로스난도 본드 걸역의 할리 베리와 로사먼드 파이크도 그리고 본드 악한역의 릭 윤과 토비 스티븐스 등이 모두 매력과 카리스마가 결여됐다. 오직 특수효과에만 의지한 영화로 그나마 아이들 장난 같아 실소가 터져 나온다. 지루하고 장황한 만화 같은 영화다.

한국의 군사 분계선에서 시작돼 거기서 끝나며 한국어 대사가 나오는데 한국계인 릭 윤과 윌 윤 리가 모처럼 본드 영화에서 비중 있는 역을 맡았지만 인물 설정이 애매 모호한 데다 연기도 학예회 수준.
한국에서 시작해 홍콩, 쿠바, 런던, 아이슬랜드를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다니면서 본드가 남북한간 전쟁을 유발시킨 뒤 세계 정복을 꿈꾸는 젊은 갑부 구스타브 그레이브스(토비 스티븐스)를 때려잡는다는 얘기. 본드는 처음에 북한에 잠입했다가 붙들려 14개월간 온갖 고문을 받으며 투옥됐다가 풀려난다. 그리고 자기 상사 M(주디 덴치)으로부터 무용지물 선언과 함께 살인면허 더블0도 박탈당한다.

본드는 자기를 배신한 자를 찾는 과정에서 아이슬랜드의 다이아몬드 갑부로 인공위성에서 투사하는 강렬한 광선으로 세계를 초토화하려는 구스타브와 대결하게 된다. 그런데 구스타브는 DNA로 재생된 옥스포드 출신 북한군 대령(윌 윤 리)으로 서툰 한국어를 구사한다. 구스타브와 함께 본드를 못살게 구는 것이 얼굴 상처를 여러 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자오(릭 윤). 여기에 본드가 소속된 영국 정보부 MI6의 첩보원으로 본드와 잠자리까지 같이 한 미란다(로사먼드 파이크)까지 본드를 배신한다.

본드를 돕는 유일한 사람이 올해 오스카 주연상을 탄 할리 베리. 베리는 징스라는 이름의 미 첩보원으로 나와 본드와 섹스하고 적들을 가차없이 처치한다. 투명 자동차를 비롯해 온갖 신병기가 동원돼 눈속임을 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으로 범벅을 했지만 식상하다. 그리고 이중 의미를 지닌 섹스 대사가 저속하다.

왜 북한인가. 부시가 ‘악의 축’의 한 국가라고 해서 골랐는가. 북한이 어떤 나라라고 영화 속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본드가 이제는 갈 데까지 다 갔구나. 감독은 뉴질랜드인 리 타마호리. PG-13. MGM. 전지역.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