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구선택 기능면 가장 중요"

2002-08-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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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고 비싼것보다 실내 공간에 맞게

최근 들어 많은 가전업체에서 빅스크린 TV, 홈디어터 등을 할인해 큰 맘 먹고 한 살림 장만하는 한인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큼직한 새 TV를 집에 들인 날부터 눈에 보이는 문제가 시작된다. 기존의 TV를 올려놓은 선반은 새 것을 올리기엔 무게를 못 이겨 기우뚱거리고, 갑자기 큰 화면이 들어선 거실은 왠지 비좁게 느껴지는 등 전체적인 집안 분위기까지 망치게 된다.

4∼5개의 서라운드 스피커 등 다양한 설비가 따라오는 홈디어터는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주변으로 줄줄이 흘러나온 전선들을 말끔히 처리하기 어렵고 이제는 무엇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도 두통거리다.
가전제품 매장에서 봤던 근사한 장식장까지 한 벌로 구입하려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고 막상 알맞은 선반을 찾아 가구점을 둘러보면 내 물건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많지 않다.

이제는 손때 묻은 집안의 가구들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애물단지로 보이고 새로 들어온 TV, 오디오 등은 엉거주춤하게 짐짝처럼 놓여진다.
65인치 이하 빅스크린 TV가 가격의 하향세로 서서히 대중화되지만 이 규격에 맞는 선반을 만드는 가구업체는 별로 없다. 가로비율이 넓어진 TV를 채워 넣을만한 장식장을 찾는 것도 쉬운 노릇이 아니다.


현재 DVD 플레이어 판매가 VCR을 능가하고 있지만 이제껏 쓰던 한 칸짜리 선반에 이 두개를 놓는 것도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VCR과 DVD를 번갈아 빼내며 쓰는 번거로움을 겪는다.

가전은 끊임없이 대형화, 다양화로 가고 있지만 이를 위한 가구들은 제자리걸음하며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것이 소비문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한 컴퓨터 등 갈수록 작아지는 전자제품과의 부조화 역시 심각한 부분. 노트북의 경우 점점 경량화 되는데 비해 이를 놓는 책상들은 필요 이상 크고 무겁거나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가구와 가전의 어색한 배치는 실생활의 불편을 초래할 뿐 아니라 집안 전체를 산만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이러한 부작용에 대해 가구업체도 할 말은 있다는 입장이다.

2년 전 웹TV가 주목받을 때 이에 맞춰 겸용 의자를 개발했던 대형 가구업체 레이지보이스(La-Z-Boys)의 경우 웹TV의 판매가 기대 밖으로 주저앉으면서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물론 이 제품은 생산 중단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가구와 가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개념이 많이 다르다는 것도 업계가 새 모델 개발을 주저하는 중요한 이유. 가령 2,000달러짜리 컴퓨터를 구입한 사람들은 몇 년 후 새 모델을 구입하지만 같은 액수의 식탁을 산 사람들은 최소 10년 이상은 쓴다는 것이다.

신제품을 만들어봐야 잘 팔릴지도 미지수이고 제품의 순환기간이 너무 길어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하소연이다. 전문가들은 이왕 가전을 들여놨다면 가급적 이에 어울리는 가구도 구비할 것을 조언한다.
자칫 비싸게 구입한 가전들이 제자리를 못 찾는 차원을 넘어 실내공간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세트로 나오는 제품이 없더라도 가구상을 뒤지면 무게와 크기에 맞는 물건을 구할 수 있으며 이때의 선택기준은 기능적 측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우선 가전을 무리 없이 설치하고 집안 분위기를 정돈시키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괜찮은 중고품을 찾아 발품을 파는 것도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이다. 가전에 맞춰 나온 건 아니지만 규격이 비슷한 제품들을 찾을 수 있다.

이미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일부 업체들은 새로 나온 가전제품에 맞는 다양한 가구들을 올 여름부터 시장에 내놓는다. 대부분이 지난 수개월 전에 디자인돼 제작에 들어간 상태다.

수익성을 충분히 확인한 뒤 몇 걸음 늦게 시작된 조치라 이래저래 소비자들의 원성을 피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나마 다행스런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재진 기자> jjrh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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