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셀러의 이중담보

2002-06-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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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크로 AtoZ

▶ 장세림

얼마 전 K선생님이 사무실을 찾아오셨다. 집이나 사업체를 사고 팔 때마다 꼭 찾아오시는 15년이 넘는 단골손님이시다.

그러나 오랜만에 찾아온 K선생님은 수척하고 걱정스런 모습이었다.

1990년 후, 남가주 부동산 값이 하강세를 거듭하자 이전에 투자한 부동산 시세가 바닥까지 떨어졌고 급기야 파산신청까지 하게 되었고, 결국은 지금 살고 있는 집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근래 다시금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면서 이자율도 아직 좋은 터라 재융자(refinance)를 하여 새 사업체를 마련할 수 있는 돈을 캐시아웃할 수 있었다.

마지막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하며 K선생님은 마침내 꼭 마음에 드는 A라는 사업체를 인수하게 되었다. 그 사업체는 같은 교회 다니는 고향사람이 오랫동안 운영해온 가게였다. 위치도 좋고, 파킹장도 넓은데다 영업시간도 적당했다.

A사업체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사업체 융자가 거부돼 대신 셀러의 현 은행채무를 그대로 인수(subject-to) 받으면서 나머지 돈은 다운 페이먼트(down-payment)로 셀러에게 현찰로 지불했다.

매상이 좋았던 이유로 구입가격은 다소 높았지만, 사업은 순풍에 돛단 듯 잘되어 갔다. 셀러로부터 인수받은 은행 채무도 매달 페이먼트를 꼬박꼬박 열심히 갚아 나갔다. 페이먼트만 잘해 나가면 문제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매월 말이면 다음달 페이먼트를 미리 보냈다. 그러기를 일년.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통지서가 렌더(lender)로부터 날아왔다. 사업체를 차압하겠다는 청천병력 같은 내용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셀러 A가게를 담보로 사업체 융자를 한 얼마 후 다시 B사업체를 인수하기 위해 추가 융자를 받았다. A사업체는 A사업체를 인수하기 위해 추가 융자를 받았으며, A사업체는 B사업체, B사업체는 A사업체가 동시에 담보가(cross-collateral) 걸려 있었다.

셀러가 B사업체를 최근 문을 닫게 되면서 총 융자금액이 자연적으로 A 사업체로 넘어왔다. 셀러는 지불 능력이 없다고 한다.

이런 경우 K선생님이 아무리 상세한 A가게의 약속어음(promissory note)를 읽어보았다 해도 융자 서류에는 이러한 이중담보의 내용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한국인 특유의 인정에다 한 교회 교인, 게다가 한 고향 사람이라는 것까지 겹쳐 B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셀러를 턱없이 믿었고 에스크로를 거치지 않았다. 특히 사업체 매입에서는 어떤 경우에든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기’라는 인식을 갖고 확실하게 짚고 살펴가야 할 점이 많다. 어떤 경우 UCC search를 통해 양쪽 담보의 주소가 나오지 않는 경우 렌더에게 조회하지 않는 한 이중담보를 알아내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러한 이중담보의 확인은 UCC search를 통해도 애매한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특히 사업체 매매시 셀러의 현 채무를 인수하는 방법은 신중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213)389-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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