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컨틴전시와 에스크로 취소

2002-05-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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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크로 A to Z

▶ 이인희

몇주 전 일이다. 오전 8시30분. 틀림없이 출근시간 전인데 회사 문턱을 들어서자 아는 분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부터 벌써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인희씨, 우리가 가게 하나 사려고 에스크로 들어간지 한 달이 넘었어요. 가게가 너무 마음에 들더라구요. 그런데 문제는 에스크로 들어가 있는 가게의 건물주인과 임대계약이 아직 완성 안됐습니다. 은행에서도 사업체 융자 때문에 임대 계약서가 있어야 하는데 건물주인은 매일 말로만 된다고 하고 서명은 하지 않은 채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요. 지금이라도 에스크로를 취소하고 다른 가게를 사고 싶어요."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인희씨, 지난주 부동산 에이전트를 통해 집을 한 채 보고 마음에 들어 그 자리에서 매매계약서에 서명했어요. 집이 50만달러짜리인데 다음날 아침 다시 가서 봤더니 전날 밤과 많이 다르더라구요. 여기 저기 고쳐야 할 곳도 많고, 집주인이 알려주지 않은 문제도 의외로 많았어요. 이미 3일이 지났는데 계약을 파기할 수 있나요.."

위의 두 가지 모두 에스크로가 종결되지 못하고 깨진 사례다. 물론 처음부터 에스크로가 깨지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번 시작된 계약이 착착 진행되고 모두 만족시키는 결과로 이끌어지면 더 바랄 것이 없겠으나 우리 삶이란 것이 항상 일정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변수가 돌출돼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을 것이다.

계약의 종류에 관계없이 중도에 파기되거나 취소되면 그동안 딜을 만든 브로커는 물론이고 셀러, 바이어, 에스크로 모두 심적 타격을 받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경제적 손실도 있을 수 있다. 이를 막고자 바이어는 대부분, 조건부 오퍼인 ‘컨틴전시’(Contingency) 조항을 계약서에 달게 된다.

사업체 거래에서는 크게 나누어 임대계약, 장부 매상체크, 융자 등의 컨틴전시가 있고 부동산 거래에서는 융자, 인스펙션(조사), 감정 등의 컨틴전시가 대표적이다.

바이어가 집 융자를 대출 받을 수 있을 때만 주택 매입이 가능하다는 컨틴전시를 달았다면 융자를 못 받을 경우에 에스크로는 취소될 수 있다. 또 피지컬 인스펙션을 통해 바이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심각한 결점이 발견될 경우 셀러가 이를 고쳐주거나 집 값을 깎아주는 등 금전적 보상을 해주지 않아 타협점이나 해결책이 생기지 않는 한 바이어는 합법적으로 거래를 깰 수 있다는 것이다.

상식선에서 알아두면 유리한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어떤 종류의 컨틴전시는 날짜를 정한다.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언제까지 유효한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정해 놓은 기간이 지나면 바이어는 그 컨틴전시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수 없게 된다.

또 하나는 도중에 에스크로가 취소될 때는 에스크로를 연 셀러, 바이어 모두 합의취소 서류에 서명을 해야만 바이어는 에스크로에 디파짓한 계약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아무리 디파짓 금액을 돌려달라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213)389-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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