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폐수 정화의 역사

2000-06-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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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0여년전 이집트 유적지서도 시설 발견

기원전 3400년에서 2500년 사이 이집트 문명시기에 빗물을 받아 식수로 저장하여 두었던 시설이나 폐수를 버리기 위해 설치한 구리 파이프관이 발견되었을 때, 현재 폐수 처리시설이나 식수 저장기능의 역사가 몇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대단한 충격이었다.

기원전 1200년 이전에 발견된 기록에는 공공 위생시설, 통풍·환기, 하수시설, 공중변소 등이 사용되었다는 증거도 있으며, 당시의 그리스인들은 아크로폴리스라는 도시에 거주하였는데 장기간의 가뭄이나 범람에 대비하여 충분한 식수의 공급과 수량을 확보하는 시설을 갖고 있었으며 따라서 하수·배수 및 폐수 처리시설에 필요한 기술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보여진다.
힌두인들 역시 물을 구리 파이프 송수관을 통해 공급하는 것이 좋고, 태양에 충분히 쐬며, 숯 등의 탄소 덩어리를 통해 여과함으로써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불순물이 많은 물일수록 불을 지펴 끓이거나, 태양에 데우거나, 뜨겁게 달궈진 철을 담그는 등 또는 모래나 거친 자갈을 통해 여과시킨 뒤 식혀 정화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에도 탄소 알갱이는 유기화학물을 제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흡착방법으로 알려져 있고 보면 당시의 정화기술은 상당한 시행 착오 끝에 얻어낸 방법으로 보여진다.


로마 집권 시기인 기원전 900년에서 기원 후 476년까지는 용수 공급과 폐수처리 정화 기술이 절정에 다다른 시기로써 몇 평방마일에 이르는 식수 저장소, 하수관, 공중변소, 더운물과 찬물을 자유롭게 섞어 쓸 수 있던 공공 목욕탕(현재 골프장 등의 옥외 유락시설 및 클럽에 비교된다) 등이 그 증거로 보여진다.

현재 폐수정화 방법의 일환인 응고(coagulation) 또는 합성(flocculation)-고분자 물질을 넣어 폐수의 불순물에 양극의 전하를 띄워 하나의 큰 덩어리로 만들어 제거해 내는 방식-과 같은 원리로 당시에는 strychnos potatorum이라고 불리던 식물성 고분자 화합물을 썼던 기록 역시 발견되고 있다.

로마시대에 물의 맛과 질을 높이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으로, 받아놓은 빗물에 월계수를 적셔두거나, 산호 또는 빻은 보릿가루 등을 자루에 넣어 물 속에 담가 두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으며, 몇 개의 물 저장통을 나란히 연결하여 물을 한쪽 통에서 다른 쪽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진흙 따위의 불순물을 가라앉혀 걸러내기도 하였다.

다공질의 물질(탄소 덩어리 등)을 통해 물을 여과 흡착시켜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일종의 자연 음식물을 쓴 물에 넣어 약 두시간만에 식수로 변화시키는 기술 역시 사용되었다. 이는 현재의 탄소 흡착방식 그리고 석회를 넣어 불순물을 응고 침전시키는 방식과 흡사하다.

고원지대에 적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성과 벽을 쌓아 시작된 로마인들의 주거는 제한된 수급량으로 인해 많은 문제가 처음부터 있었을 뿐 아니라 장티푸스나 말라리아 등 물을 통해 전염되는 병으로, 길가에 빗물과 쓰레기로 인해 더럽혀진 물을 배수하기 위한 하수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쓰레기가 많아지면서 빗물이 이렇게 불어난 쓰레기를 모두 쓸어 내려갈 수 없게 되자 하수구나 오염된 주방, 목욕탕 등에서 유독성 개스가 발생되고, 더럽혀진 배수로, 지하 하수시설에서 병균을 동반한 쥐들이 온 거리를 오염시키는 사태에 이르렀다.

로마의 엔지니어들은 일단 깨끗한 물의 제공지를 물색하여 수질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부식성(corrosion), 떠있는 고체물질의 양(suspended solids), 끓음 특성(boiling characteristics) 그리고 투명성(clarity)을 조사하였는데 부식성 같은 경우는 물을 구리관에 장시간 넣어두었을 때 관에 녹이 생기거나 색깔이 변하는 정도로 판단하였다. 몇 군데의 탐색과 수질조사를 통해 마침내 로마시로부터 약 5마일 동쪽에 위치한 Via Catallina라는 식수원을 발견하고, 외세로부터 수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장장 10.29 마일에 이르는 지하 식수 공급관을 묻었다.

Aqua Appia로 명칭되는 로마의 첫번째 식수원(aqueduct)으로 기원전 312년에 탄생되어 하루에 1,600만갤런 이상을 공급하게 되었는데, 이로부터 364년에 걸쳐 8개의 추가 식수원이 개발되었고 로마는 이러한 상질의 물을 식수, 분수, 목욕, 소방, 쓸어 내림(flushing) 등의 용도로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중세의 암흑시대가 로마의 멸망으로 도래하면서, 물을 끓여 세균을 죽이는 정화방법이 없어지고 마법을 이용해 식수를 만드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세균, 질병, 오염이 팽배해지고, 18세기를 암흑의 시대로 이끌게 되는데, 이를 보여주는 증거로, 나병이 1300년대 중반에 전염되었고, 검은 죽음으로 불리는 플라그가 당시 유럽 인구의 4분의1일인 6,000만명을 사망케 하였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이 연구한 몇가지 수질 정화방법을 나열하자면, 수직 침투 또는 여과, 끓임, 증류, 응고를 사용한 물의 투명성 개선 등이 있는데, 그는 또한 바닷물을 토양을 통해 여과 흡착시켜 소금을 제거하면 단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은 로마인들을 비방했는데, 그 대신 그는 토양에 구멍을 뚫어 지하수를 채취하여 식수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도 하였다. 1700년대 말에 들어 과학이 발전하며, 산소분자가 분리되고, 이산화탄소가 발견되었으며, 질량 보존의 법칙이 수용되어 산화작용, 연소 등으로 이산화탄소와 물이 생성된다는 알아내었다.

이와 같이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몇천년 전에도 현재의 수질 검사와 정화에 대한 요구 그리고 그 당시에 합당했던 기술은 놀랍게 발달되어 있었으며 특히 로마시대에서 보여진 역사는 현재의 정화처리 기술의 기원을 보여주는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180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개발 실시된 수자원 공급과 정화처리에 대한 설명은 다음주에 계속하겠습니다.

문의: JMK 환경 회사
(800) 900-1511
www.jmken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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