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교통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인구 비율로 따져 가장 많았던 때는 1937년이다. 20세기초 포드가 모델 T라는 국민차를 개발해 운전은 대중화됐지만 자동차와 도로의 안전 장치와 운전자의 숙련도는 크게 뒤졌기 때문이다.
그 후 국민들의 안전 의식이 높아지면서 1937년 10만명당 30.8명에 달했던 교통 사고 사망자수는 요즘 13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매년 4만명이 넘는 미국인이 차 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던 미국 사망자 수는 집에 갇혀 지내야 했던 사람들이 난폭 운전으로 화를 풀려 해서인지는 몰라도 2020년 팬데믹 기간 급속히 늘어났다. 그 후 좀 나아졌다고는 하나 미국인들의 운전 습관은 엉망이다. 빨간 불에 그냥 지나가는 것은 예사고 황야의 무법자처럼 난폭 질주하는 차들이 부지기수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은 양반이다. 한국도 한때는 최악의 교통 사고 국가였다. 80년대말부터 자가용이 널리 보급되면서 운전자는 급증했는데 이에 걸맞는 도로와 차량의 안전 장치와 운전 의식은 따라가지 못했다. 이에 대한 반성이 이어지면서 요즘 한국 교통 사고 사망자는 연 2천500명으로 10만명당 5명꼴인데 이는 최악이던 1991년에 비하면 80%가 줄어든 것이다.
사고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로 사방에 깔려 있는 감시 카메라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 걸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비게이션이 친절하게 미리 알려주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까지는 천천히 가다 지나면 캥가루처럼 뛰는 운전자가 대부분이다. 이를 막기 위해 후방까지 찍는 카메라가 도입됐지만 이 또한 별무 신통이다. 내비가 이것까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정부가 가짜 카메라를 설치하는 일까지 있었다. 진짜는 수천만원 하는데 가짜는 수십만원이면 되었기 때문이다. 돈을 절약할 수 있다면 사람을 속이는 게 무슨 문제냐는 한국인의 의식이 드러난다. 미국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공무원도 없겠지만 법적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한국인은 감시 카메라를 빠져나가는데는 익숙하나 질서 의식은 아직도 약하다. 조금만 틈이 있으면 수시로 끼어들고 이렇게 끼어들기를 하기 때문에 레인을 바꿔야 하는데도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이들 운전자에 피터지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는 한국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와 대조적인 것이 일본이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안전한 도로를 가진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과 달리 감시 카메라도 거의 없고 경찰도 별로 보이지 않는데도 고지식할 정도로 법규를 잘 지킨다. 어디를 가도 난폭 운전, 과속 운전, 새치기하는 사람을 찾아 보기 힘들다. 그 이유를 관광 가이드에게 물어 보니 원래 공공 의식이 높은데다 한 번 걸리면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벌금이 나온다고 한다.
일본인의 공공 의식은 범죄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감시 카메라에 걸리는 강도, 살인 등 강력 범죄는 한국이나 일본 모두 낮다. 그러나 여기 잡히지 않는 사기, 무고죄에 관한 통계는 두나라가 하늘과 땅 차이다. 한국의 사기 범죄는 인구 비례로 일본의 10배, 거짓으로 남을 헐뜯는 무고죄는 100배에서 200배에 달한다.
교통 질서는 그 나라 국민의 의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생활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시민 의식이 강한 나라의 길은 대체로 안전하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로를 갖고 있는 나라로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스랜드, 스위스 등이 항상 최상위권에 꼽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들 나라 교통 사고 사망자수는 10만명 당 2.1명으로 한국의 40%, 미국의 15% 수준이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이들 수치에 근접해 있다.
2024년 7월부터 2025년 7월까지 핀란드에서는 단 한 명의 교통 사고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정부가 한 명의 사망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비전 제로’ 정책을 엄격하게 시행했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또 티켓 벌금을 소득에 비례해 매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2023년에는 한 부자가 13만 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미국인들은 툭 하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교통 질서에 관한한 미국은 주요 선진국 중 최하위에 가깝다. 걸핏 하면 주변에서 어이 없는 교통 사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LA 한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하루 아침에 높이기는 어렵지만 감시 카메라를 곳곳에 설치하고 과속 등 교통 단속을 엄격히 시행하는 것만으로도 교통 사고 수는 대폭 줄일 수 있다. 유권자와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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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