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1B 규제 대폭 강화에 비자 불확실·채용 둔화
▶ 실직시 신분상실 위기 “미국 떠날까” 확산세
남가주 IT 기업에서 일해 온 30대 한인 김씨는 최근 회사 내 구조조정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안하다. 몇 년 전 H-1B 비자로 미국에 정착한 그는 주택 구입도 고민하던 중이었지만 주변 동료들이 잇따라 해고되고, 까다로운 심사 때문에 일부는 비자 연장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직장을 잃을 경우 제한된 기간 안에 새 고용주를 찾아야 하는 김씨는 “단순히 직장을 잃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에서 계속 살 수 있느냐가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컴퓨터 업계 취업을 준비 중인 한인 이모씨도 비자 심사가 까다로워지고 업계 채용 분위기도 얼어붙으면서 미국 내 취업을 포기하고 한국행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미국에 남는 것이 최선인지 확신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H-1B 취업비자 규정이 강화되고 기술 업계의 고용 환경이 악화되면서 한인들을 비롯한 이민자 기술 인력들이 미국을 떠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간 미국에 정착해 커리어와 삶의 기반을 구축해 온 이들조차 체류 안정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탈미국’을 검토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시애틀타임스 등 보도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비자 심사 기준이 한층 엄격해지고 행정 처리 지연이 잦아지면서 외국인 전문 인력들의 불안감이 크게 증폭됐다. 특히 비자 연장이나 신분 변경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추가 서류 요구나 심사 지연이 빈번해지며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인력들조차 언제든지 신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다.
H-1B 비자는 구조적으로 고용주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연간 발급 쿼터가 제한돼 있어 근로자의 선택권과 이동성이 크게 제한되는 특징이 있다. 특히 직장을 잃을 경우 통상 60일 내에 새로운 고용주를 찾지 못하면 체류 자격 자체가 소멸되는 구조가 최근 IT 업계 취업난 속에 큰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최근 테크 업계의 고용 둔화와 맞물리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외국인 기술 인력들은 일자리 자체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동시에, 실직 시 체류 자격까지 위협받는 이중의 불안을 겪고 있다. 실제로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수년간 미국에서 경력을 쌓아왔지만 지금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특히 H-1B 비자의 경우 배우자는 취업이 제한되는 데다 어린 자녀들이 있는 경우 부모의 비자 문제가 곧바로 자녀의 교육 환경 변화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부담이 더욱 크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민자 기술 인력들 사이에서는 대안 국가를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캐나다는 비교적 안정적인 이민 정책과 영주권 취득 경로를 제공하고 있으며, 유럽 일부 국가들도 고급 기술 인력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비자 요건을 완화하고 있다.
테크 기업 관계자들은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정책 리스크로 인해 인재를 잃게 된다면 기업 경쟁력은 물론 미국 전체의 기술 리더십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이 장기적으로 ‘브레인 드레인(두뇌 유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 이민 전문가는 “지금의 시스템은 고급 인재들에게 ‘언제든 떠나야 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며 “이민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점차 인재 유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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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