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최근 미국 방문에서 보여준 매력과 웅변은 미국 정치권의 갈라진 틈을, 적어도 하루만큼은, 봉합하는 듯했다. 지난주 화요일 연방의회 합동회의 연설에서 찰스 3세는 정치적 스펙트럼 전반에 걸친 의원들을 여러 차례 기립 박수로 이끌었고 종종 같은 발언에 같은 반응을 끌어냈다.
독립선언 250주년에 맞춰 절묘하게 이루어진 이 연설에서 찰스 3세가 국민의 대표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혁명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민주공화국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가치들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의사당이 서로를 적대하는 정치인들로 가득 찬 공간이 아니라 국왕을 기쁘게 하려는 교양 있는 궁정 신하들로 채워진 듯 보일 정도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전형적인 영국식 억양은 일종의 무기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이제 확신을 가지게 됐다. 미국인들은 유럽 왕정, 특히 대영제국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치렀지만, 정통 발음의 영국식 억양 앞에서는 향수에 취한 귀부인처럼 맥을 못 춘다. 물론 영국에는 수십 가지의 다른 억양과 방언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던 미국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텍사스 출신의 조지 W. 부시 대통령보다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의 영향에 더 끌렸다고 인정할지 궁금하다. 다만 스코틀랜드 출신인 블레어조차 상황에 따라 억양을 다소 낮추기도 했지만, 전쟁의 정당성을 설명할 때만큼은 완벽하게 부드러운 캐시미어 같은 어조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찰스 3세를 소개하며 국왕의 “아름다운 억양”을 언급했다. 트럼프 역시 영국식 영어의 매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왜 같은 단어와 같은 문장으로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면서도 영국식 표현은 더 지적이고, 더 흥미롭고,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지에 대해서는 언어학자의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분명히 말해 트럼프 대통령과 찰스 3세는 성격, 행동, 세계관 어느 면에서도 이렇게까지 다를 수 없는 두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스 3세는 단지 존재만으로도 트럼프의 충동성, 거친 태도, 때때로 손님에게 모욕을 주려는 유혹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2025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방미 당시를 떠올려보라. 백악관에서 생중계된 회담 도중 J.D. 밴스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지원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몰아세웠다. 트럼프에게 예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물론 국왕은 실질적인 정치 권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또한 그에게서 무엇을 얻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찰스 3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그 누구보다 용감한 국민들”을 보호하는 중요성을 언급했다. 반면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를 때로는 유용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는 ‘문제 있는 연인’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가 NATO를 “종이호랑이”라고 부르는 것과 달리 찰스 3세는 우크라이나 방어가 “진정으로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생 환경운동가로 살아온 찰스 3세는 또한 의회에 “핵심 자연 시스템의 붕괴에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의원들은 박수로 화답했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과 달리 기립하지는 않았다. 지구와 그 자원을 보호하는 문제는 트럼프에게 있어 우선순위가 아니며, 그는 지구를 글로벌 녹지 공간이나 각종 건축적 과시의 무대로 보는 듯하다.
중요한 사안들에서 트럼프와 분명히 상충되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찰스 3세는 연설의 대부분을 양국의 공동 역사, 가치, 자유와 상호 지원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미·영 동맹이 단순히 과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협력 위에 세워진 것이며 “과거의 성취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역시 두 나라의 우정, (어느 정도) 공통된 언어, 그리고 미국이 영국에 빚지고 있다고 말한 “도덕적 용기”를 강조했다.
전국 각지에서 수백만 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서며 ‘왕은 없다’ 집회가 확산되는 시점에서 한 명의 실제 국왕이 워싱턴 정치에 품위와 예의를 불어넣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트럼프를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인물’로 보는 비판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것도 사실이지만, 대통령이 본받을 만한 모델로서 찰스 3세보다 나쁜 선택도 없을 것이다. 물론 왕국을 위해 신탁된 46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다면 관대함과 겸손을 보이기가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찰스 3세의 예의, 세련됨, 외교적 접근 방식은 미국 정치의 거친 분위기와 대비되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의 체류가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마저 들 정도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를 존중하는 그의 태도가 대통령의 가장 나은 모습을 끌어냈다는 점이다. (그에게 그런 모습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제대로 된 국왕과의 교류 속에서 한층 격상된 이미지를 경험한 트럼프는 그 기분을 다시 재현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영국식 억양이 그의 설득력을 높여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그가 그런 억양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유려하고 학식 있는 ‘트럼프 국왕’이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설득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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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