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정훈 기자의 음악 산책>

2026-05-01 (금) 01:43:09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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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奴隸) 베르디

<이정훈 기자의 음악 산책>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옛 속담이 있다.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1813-1901)가 평생에 가장 잘한 일은 전 재산을 모아 ‘평화의 집’을 만든 것이었다. 갈 곳 없는 가난한 음악가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평화의 집은 1902년에 문을 열었는데 베르디 사망 1년째 되는 해였다. 이는 베르디의 유언이기도 했는데 좋은 일을 한다는 소리가 부담스러웠던 베르디는 평화의 집 멤버들이 빚진 마음없이 기거하길 바랬고 지금도 평화의 집은 베르디가 남긴 유산 등의 기금으로 약 60여 명의 은퇴 음악가들에게 말 그대로 평화… 크나큰 쉼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베르디는 나이 87세로 사망했는데 당시 4, 50세에 불과했던 평균 수명의 시대에 장수하다 죽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베르디는 늘 음악가로서의 명성은 물론 생활고를 걱정해야했는데 유명해지고 난 뒤에도 스스로를 평생 노예처럼 일했다고 고백하곤했다고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위대한 음악가가 스스로를 노예로 비교한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바흐는 음악을 신이 내리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다. 베토벤도 음악으로 세상을 치유하겠다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다. 모든 음악은 선(도덕)에 이바지한다고 말한 바그너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예술이 단순히 하나의 노동, 즉 노예가 아니라 선택받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높은 정신적 활동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왜 베르디만이 스스로를 노예에 비견했을까?
베르디는 스스로를 노예였다고 말함으로서 그 자신을 존경받는 예술가가 아니라 세상을 춤추게 만드는, 오락적인 요소로서의 요즘으로 말하면 언터테이너임을 자처했다. 즉 예술성이고 뭐고 이는 이차적인 문제일뿐, 우선 막이 오르면 공연은 재미있어야한다는 것이었다. 즉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희노애락과 강렬한 페이소스… 극적인 흥분을 느끼는 그런 예술이 되지 않고는 무대예술란 그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요즘처럼 멋들어진 작품만을 시즌별로 오픈하는 그런 고상한 예술활동의 장이 아니었다. 거의 연중무휴 영화관처럼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재미를 제공하는 그런 오락(언터테인먼트)의 장이기도 했다는 것인데,. 여기에 베르디가 노예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던 딜레마가 존재했다. 작곡가는 계약직이었고 매년 한 두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지 않으면 연봉이 나오지 않는 고용직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좋을 때나 싫을 때나, 비가오나 눈이오나 창작에 몰두하지 않으면 그곳에 매달린 극장 식구들의 생계까지 영향을 끼치는, 무거운 책임을 떠맡을 수 밖에 없는 직업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 방 날려 히트하면 전 유럽 극장을 휩쓰는 떼돈이 들어오지만 실패할 경우 무대 예술에 들어가는 엄청난 경비를 날리는 처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오페라 작곡가요 또 극장측에서도 쉽사리 맡길 수 없는 것이 작곡이란 의무이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베르디는 평생에 총 34편의 오페라를 남겼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은 지금도 잘 공연되지 않는 작품들이었다. 즉 제아무리 베르디였어도 늘 절반은 좌절을 겪고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베르디의 무대예술을 보며 ‘비바 베르디!’를 외치면서도 베르디가 느꼈던 고통의 절반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예술을 한갖 노예(의 작업)에 비견했던 베르디의 천박함에도 곤혹스러움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오페라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대단히 고상하고 장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문턱이 낮고(요즘이야 입장료가 조금 비싸긴하지만)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그 극적인 힘과 재미때문이다.

‘노력(努力)’의 한자적 의미는 노예(奴)처럼 힘(力)쓴다는 뜻이다. 노예처럼 일했던 베르디… 그 베르디가 사망한지 올해로 125주년을 맞는다. 베르디는 무엇때문에 스스로 노예가 되어가며 극음악에 매진했고 또 그 고통 속에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려했을까? 재미? ... 아니면 그 속에 감추어진 어떤 인간성 회복…아니면 삶의 비극…?

요즘세대를 가리켜 개인주의 시대,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거짓말일 뿐인지도 모른다. 다만 매일의 삶이 흥없는 춤사위를 바라보는… 메마른 삶이 있을 뿐이다. 때로는 한 사람의 노예가 천리길을 한걸음으로 만들 수 있다. 살면서 베르디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소양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실수인 것은 아닐까…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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