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화경] 금의 이동

2026-04-17 (금) 12:00:00 김현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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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 여파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을 팔고 있다. 금값 하락 탓도 있지만 유가 급등과 통화 변동성 확대가 더 큰 이유다. 금을 팔아 외환시장 개입에 쓸 달러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3월 한 달에만 금 보유량을 131톤 줄였고 폴란드도 군비 확충 비용을 위해 금 매도를 검토 중이다. 러시아 역시 몇 달째 금을 내다 팔았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비상금을 꺼내 쓰는 형국이다.

■중국은 정반대다. 인민은행은 17개월째 금을 사들이며 3월에도 4.5톤을 추가해 보유량을 2108톤으로 늘렸다. 신흥국들이 내놓는 금을 중국이 흡수한 셈이다. 가격에 따른 단기 대응이 아니다. 보유 금의 달러 가치가 줄며 손실이 나도 매입을 멈추지 않았다. 위안화 변동성 대응뿐 아니라 자산 안전성을 높여 위안화 국제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산이다. 판궁성 인민은행장의 “결제 시스템의 국경 간 연결성을 강화하겠다”는 말도 선언에 그치지 않을 듯하다.

■유럽은 계산기를 다르게 두드린다. 중국이 금을 쓸어담는 사이 유럽 국가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맡겨둔 금을 되찾으려 한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연준 보관 금 129톤을 미국에서 처분한 뒤 유럽에서 다시 사들였다. 매매 수익을 강조하지만 시장에서는 정치적·물리적 부담 없이 금의 위치를 옮긴 것으로 본다. 프랑스는 2437톤의 금을 파리의 지하 금고 ‘라 수테렌’에 보관하고 있다.


■독일 분데스방크도 연준에 맡긴 1236톤의 금이 고민스럽다. 미국의 정치적 리스크가 연준의 신뢰에 흠집을 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그 틈을 노리는 곳이 홍콩이다. 홍콩 정부는 연내 금 중앙 청산 시스템을 시험 가동하고 3년 안에 2000톤 이상의 보관 능력을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한국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금 보유량은 104.4톤, 외환보유액의 3.2% 수준으로 2013년 이후 변화가 없다. 유동성과 상징성 탓에 움직임이 쉽지 않겠지만 전쟁과 통화 불안이 겹친 지금 자산 다변화를 더 미루면 곤란하다. 실물 금이 부담이라면 금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김현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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