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들이 말하는 ‘윤 탄핵 1년’
▶ 헌재 앞·남태령 고개·여의도 광장…
▶ 밤새 구호 외치고 일터 향한 시민들
▶ 영하의 기온 버티며 더 끈끈한 연대
경기 화성시에서 초등학교 특수교사로 일하는 김다원(31)씨는 2024년 말과 지난해 초 '탄핵 광장'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한파에 살이 에이는 듯 아팠지만, 광장은 분명 뜨거웠다.
12월 3일 그날 불법 계엄 선포 이후, 김씨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가까운 한강진역과 서울과 경기 과천시의 경계인 남태령 고개의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밤을 지새웠다. 때로는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윤석열 퇴진"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일을 마치면 매일 집회에 나갔다. 밤새 구호를 외치고 새벽이 되면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무섭진 않았을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속한 김씨는 "오히려 집회 현장이 안전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계엄 초기 노조원을 잡아갈까 두려웠다"고는 했지만 "많은 시민이 꾸준히 모여 목소리를 내는 모습에 (나도) 거리로 나갔다"고 했다. 그는 "(그 목소리들이) 대통령 파면 선고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세상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았지만 시민들 스스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고 했다.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꼭 1년이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8인 중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면서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결정에 이견은 없었다. 그리고 그 동력은 분명 한겨울 불법 계엄 선포 이후 꽃 피는 봄까지, 서울 여의도 광장과 한남동 관저, 헌법재판소 앞, 남태령 고개 등에서 이어진 시민들의 함성이었다. 거리의 연대가 이뤄낸 것은 정권 교체를 넘어, 함께 행동하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이었다.
시작은 당연한 분노, 한편의 불안이었다. 불법 계엄 선포는 시민들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헌정질서를 짓밟은 정부를 가만히 둘 수 없다는 생각에 시민들은 거리로 향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김유진(30)씨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평소엔 불만이 있어도 집회에 나가진 않았는데, 계엄이라는 선을 넘는 상황을 보고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격려의 공간이었다. 영하의 기온에 참가자들은 핫팩과 음료를 나누고 식당 선결제로 끼니를 챙겼다. 한남동 관저 앞 등에선 보온 은박지를 뒤집어쓰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밤을 견디는 이들을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모습이 은박으로 싼 키세스 초콜릿과 닮았다며 사람들은 그들을 '키세스 시위대'로 불렀다.
연대는 남태령에서도 또렷했다. 2024년 12월 말,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상경하다 남태령 인근에서 경찰에 가로막혔다. 이 소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퍼지자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달려와 "차벽을 열라"고 외쳤다. 이른바 '남태령 대첩'이다.
시위에서는 중장년층이 다수인 농민과 젊은 시민이 직업과 나이를 넘어 하나가 됐다. 충북 진천에서 올라온 여성 농민 유주영(58)씨는 "청년들과 함께 고민을 털어놓고 나라 걱정을 했다. 청년들이 농민들 먹으라고 식사도 챙겨주고 보조배터리도 챙겨줬다"고 회상했다.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충남 논산에서 온 농민 권태옥(59)씨는 "예전에는 우리들 집회에 시끄럽고 불편하다고 했는데, 그때는 시민들이 응원하고 호응해줬다"며 "당시 만난 청년들이 집에 와서 자고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에는 당시 남태령을 지켰던 농민과 청년 50여 명이 서울 종로구에서 '남태령 첫돌' 행사를 갖기도 했다. 농민 중심 집회가 세대를 아우르는 연대의 장으로 거듭났다는 평가가 들렸다.
계절이 네 번 지나, 파면된 대통령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정부도 교체됐다. 그러나 시민들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인천에서 탄핵 촉구 집회가 열린 광화문 광장까지 4시간을 왕복했던 우동연(20)씨는 “계엄이 독재와 학살로 이어진다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거리로 나섰다”며 “파면 이후 1년은 내란 청산의 시간이어야 했는데, 기대만큼 나아가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광장의 목소리를 일상의 변화로 연결해 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전 대통령 파면 당시 종로에서 ‘탄핵 깃발’을 흔들었던 한의사 석민주(30)씨는 “비상식적인 상황은 사라졌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처럼 당시 광장에서 논의된 사회적 의제들이 아직 활발히 다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다양한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짚었다.
이들은 당시 경험한 연대의 힘을 믿는다. 김유진씨는 “계엄 당시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지만, 현장에서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과 대통령 파면이라는 큰 산을 넘으면서 어떤 위기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앞으로의 민주주의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연결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을 확인한 1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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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수·나민서·남병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