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주주의 회복·사회적 통합 ‘헌재의 숙제’ 풀려면 멀었다”

2026-04-04 (토) 12:00:00 정준기·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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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학자들의 ‘윤탄핵 1년’ 진단
▶ 기각·각하 의견 없는 전원일치 파면
▶ ‘윤어게인’ 세력에 정당성 안 줘 다행

▶ 국민 배반한 권력은 사법 판단 대상
▶ 시민 저항 상찬은 다음 세대에 교훈
▶ 사법·검찰개혁, 경청과 객관화 부족
▶ 국민·언론 등 헌법 이해 더 깊어져야

“민주주의 회복·사회적 통합 ‘헌재의 숙제’ 풀려면 멀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2월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 의견 진술을 하고 있다. [연합]

“국회는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하고, 피청구인 역시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합니다. (중략)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했어야 합니다. (중략) 피청구인은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 4일 ‘대통령 윤석열 파면’을 선고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군·경을 동원한 헌법기관 권한 훼손 및 국민 기본권 침해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하는 대화와 타협을 요청한 것이다. ‘민주주의 복원’과 ‘사회 통합’을 이루라는, 정치권과 우리 사회가 풀어내야 할 숙제이기도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왔을까. 한국일보가 5명의 헌법학자와 함께 한 진단 결과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쪽이었다. 반대 의견에 대한 경청, 차분한 토론 자세는 여전히 부족하고, 불법 계엄에 대한 확실한 단절 또한 멀기만 하다. 최악의 상황은 넘겼지만, 과제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평가다.


헌법학자들이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주목한 건 ‘헌법 문제가 전면에 드러난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전광석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명예교수는 “’비상계엄 선포 요건’ ‘헌재 재판의 절차’ 등 처음부터 끝까지 헌법 이해와 관련된 문제였다”고 짚었다. 사건의 전 과정을 모든 국민이 직접 목도했다는 점도 특징 중 하나였다. 이황희 성균관대 법전원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은 은밀한 부패 행위를 다뤄 정보가 제한적이었다면, 이번에는 모두가 더 (공개된) 정확한 판단 근거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탄핵 결정이 쉬운 길은 결코 아니었다. 전광석 교수는 “’대통령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는 식의 주장이 나오거나 계엄 해제 의결, 탄핵소추안 의결이 차질을 빚는 것을 보면서 우리 민주주의가 취약하다고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인지 교수들은 전원일치 파면 결론을 다행으로 여겼다. 이헌환 아주대 법전원 명예교수는 “지금도 ‘윤 어게인’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두 명이라도 기각 혹은 각하 의견을 냈다면 그런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절차 면에서의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전원 교수는 “시간표에 쫓기면서 방어권 보장 등을 소홀히 한 것 같다”면서 “결론이 정당해도, 절차에서 뒷말을 남기면 지켜보는 개개인에게 의문을 품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헌재 결정문과 관련, 학자들이 가장 먼저 언급한 건 ‘대통령 권한의 한계’에 대한 문제다. 이헌환 교수는 “’국민 신임 배반’이 핵심”이라며 “대통령도 결국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것인데, 국민의 의사에 반해 권한을 행사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부당하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이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재현 동아대 법전원 교수는 “파병 등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절차, 형식, 내용 등 범위를 초월한 경우라면 당연히 사법 판단 대상이 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짚었다.

‘대화와 타협’ ‘협치’ 역시 주된 메시지로 꼽았다. 이황희 교수는 “각자가 자기 권한만 극도로 행사하면 타협의 여지가 안 생긴다”면서 “갈등을 민주주의 원리에 맞게, 즉 ‘정치’로 풀어야 한다는 게 헌재의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시민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 수행을 상찬한 대목도 있는데, 다음 세대에 교훈이 될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헌재가 남긴 ‘정치 복원’ 및 ‘통합’의 비전은 아직 요원하다는 게 헌법학자들이 내린 평가다. 조재현 교수는 “사법개혁, 검찰개혁 등 이슈에 대한 찬반이 헌법의 시각이 아니라 정치 성향에 따라 뚜렷하게 갈리고, 무슨 의견을 말해도 진영 논리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다”면서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객관적으로 사안을 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여권이 추진하는 ‘내란 청산’에 대해서도 “이미 법원 판결 등으로 헌법 질서 내에서 잘 해결하고 있다”면서 “손대지 말아야 할 곳까지는 손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짚었다. 헌법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민주주의 회복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황희 교수는 “애초에 싸움이 있어야 갈등이 생기는데, 야당이 역할을 전혀 못 하고 있어서 협치 이야기가 나올 상황이 아닌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여권의 사법개혁 추진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 이재명 대통령 사건 파기환송 등 이례적 판단이 이어지면서 사법부가 자신들을 해코지한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 반작용으로 (개혁 움직임이) 강하게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등은 사실 굉장히 오래 논의가 이어져 온 이야기인데, 이에 대해 좀 더 차분하게 논의를 했다면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도 결국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았겠느냐”고 아쉬워했다.

차진아 교수는 “지금은 민주당이 뭘 해도 계엄보다 낫다는 태도인데, 계엄이 잘못된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삼권분립을 붕괴시키는 게 말이 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윤 전 대통령 탄핵으로 국민 주권을 확립하는 깔딱고개를 막 넘은 것”이라며 “아직 정리해야 할 과거의 유산이 남아 있다”(이헌환 교수)는 평가도 있었다.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무를 비롯한 헌법 가치는 제대로 세워졌을까. 전광석 교수는 “탄핵을 거치며 국민, 공직자, 언론 종사자들의 헌법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어져야겠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민주주의는 한 번 무너지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면서 “아직도 상당히 많은 공직자들, 혹은 일부 국민이 12·3 계엄을 헌법 기준에 따라 평가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직 민주주의 회복까지 갈 길이 멀다는 진단이다.

<정준기·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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