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 무해통항권과 해상통행료
2026-04-03 (금) 12:00:00
민병권 서울경제 논설위원
어느 집 마당을 주인 허락 없이 외부인들이 지나간다면 가택 침입 혐의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국제 관계에서도 타국의 영토·영공·영해 침범은 분쟁을 초래할 위법행위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다. 어느 국적 선박이든 ‘평화·공공질서·안전을 해치지 아니하는’ 조건이라면 타국 영해를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다. 심지어 군함도 군사행동 등이 아닌 단순 통과 목적이라면 타국 영해를 횡단할 수 있다. 이는 국제법과 관습으로 보장된 권리다. 이른바 ‘무해통항권’이다.
■무해통항권은 1958년부터 국제협약과 국제법에 명시됐다. 당시 1차 유엔해양법회의 참가국들은 해양 주권 분쟁 등을 풀기 위해 4개 협약을 채택했다. 그중 ‘영해 및 접속 수역에 관한 협약’이 무해통항의 개념·보장 규정을 처음 담았다. 당사국들은 후속 회의를 거쳐 4개 조약을 단일 협약으로 통합·보완했다. 바다의 헌법인 유엔해양법협약이다. 우리나라는 1994년 발효된 이 협약을 2년 뒤 비준해 무해통항권을 명시적으로 확보했다. 이로써 우리 경제의 생명줄인 해상무역 통로를 한층 확실하게 열었다.
■이란이 최근 미국과 전쟁 중에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더니 ‘선박 해상 통행료’ 부과 계획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는 무해통항권을 흔드는 행위다. 이란은 유엔해양법협약에 서명하고도 비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해통항권 보장은 관습법상 해협 연안국의 책무다. 국제사법재판소도 1949년 관습법에 따라 공해(公海)를 잇는 해협에서 연안국들은 국제 항행을 위한 무해통항을 막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해당 판결은 ‘평시’를 전제로 내려졌다.
■정부는 향후 미국과 이란 간 휴전·종전으로 호르무즈해협에 평시 상태가 복원되면 관습법상 무해통항을 보장받을 방법을 치밀하게 모색해야 한다. 이란이 종전 후 재건 자금을 위해 해상 통행료를 본격 부과할 수 있어서다. 남중국해에서도 이런 사태를 겪지 않도록 외교적으로 대비하고 유사시 우리 선단을 호위할 해군력도 실전용으로 대폭 강화해야 한다.
<민병권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