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요칼럼] 모나크 나비

2026-03-31 (화) 12:00:00 홍용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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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서성이는 숲, 모나크 그로브다. 어두운 녹색 잎의 유칼립투스 사이로 스며드는 향기가 서늘하다. 작년 봄에도, 햇살만 따뜻했다. 올해는 나무마다 주홍빛 날개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꿈을 꾸며 조금 이르게 왔는데도 숲에는 두어 마리만 팔랑이고 있다. ‘어떻게 저 두 마리만 남았을까.’ 그 순간, 마음이 아릿해진다. 하기사 나비도 세상이 버거웠을까?

저 나비춤을 보며 작은 존재들의 삶을 생각한다. 모나크 나비의 귀향은 대물림 릴레이다. 봄나비는, 여름나비에게 여름나비는 가을나비에게 바통을 전하고는 영원으로 날아간다. 마지막 태어난 가을 나비 세대만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남쪽 이 숲으로 돌아온다. 작은 날개짓 하나로 초록빛 먹이를 찾아, 떠도는 순환이지만, 여러 세대가 이어 완성하는 여정이다. 그들의 귀향은 각 유전자에 새겨진 문신 같다. 나는 그 문신을 바라보며 내 안의 상처와 희망을 바라본다.

어느 여행길이 쉽기만 하랴! 지금 춤추는 저 나비의 여정을 가로막는 것은 비바람과 굶주린 새, 그리고 사라져가는 서식지 등의 위기일 것이다. 나비의 떨림은 내안의 두려움 같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구가 줄어든다. 포연이 넘쳐난다. 디지털 시대엔 무기도 디지털일까. 지지(知止)는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하던 말이었다. ‘지지’라는 말은 쉽지만 정작 실천이 문제다. 나는 오늘 지지를 알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때로는 서고 싶어도 설 수 없는 때가 있다.


나의 여로는 무엇인가. 삶의 길, 비바람이 불면 나무 뒤에 숨고, 추우면 서로 몸을 맞대고, 꽃을 보면 꿀을 먹다가, 잠깐 종족의 임무를 마치는 방식은 나비나 나도 같다. 저마다 작은 날갯짓으로 어떤 험한 시간도 헤쳐간다. 나는 엄마를 두고, 아이들 교육을 목표로 바다를 건너왔다. 낯선 곳에 살며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감내하고 있다. 정말, 그것은 내뜻이었을까. 오지 않았다면 어려움이 없었을까.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장벽은 작은 자동차 사고까지도 연결되니까 작지 않다. 사고 시 나는 글로브 박스조차 열지 못했다. 보험부터 리포트까지 영어로 작은 스마트폰으로 해야하니 마음이 추웠다. 그래도 나는 문장이라는 햇살을 그린다.

나비의 삶에서 사람이 비친다. 모나크의 작은 날갯짓들은 알에서 깨어나 번데기라는 허물을 벗고 우아하게 날고, 때로는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과 독이라는 생존의 선물로 귀향을 완수한다. 내게 주어진 생의 방식은 무엇인가. 돌아보니, 단어 하나를 찾아 헤매는 노력이 그것일까. 문장 한 줄을 완성하기 위해 씨름하는 나는 번데기같다.

비록 우화하지 못할지라도, 허물을 벗으려 나를 녹여내려 한다. 한 문장이 날아오르기를 기대하면서. 그렇게 나의 흔적을 그려나가는 것, 그것이 내 생명이란 선물에 답하는 의미일 터이다. 황홀한 나비의 물결을 꿈에 보는 숲, 바람이 수런대는 이 숲에서 연약한 존재들이 남긴 오래된 지혜를 보며 나를 본다.

거센 비 뒤에도 나비는 다시 날아오른다. 사고의 파편을 딛고 다시 시동 거는 나의 문장도 그 뒤를 따르고 싶다.

<홍용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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